산책길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 잠시 멈춰섰는데 문득 발소리 밖엔 들리지 않았던 숲길에서 묻혀있었던 소리들이 들린다. 바람 결에 푸수수 흩어지는 가랑잎 소리랑 발자국 소리 외엔 별다른 소리가 없었는데 낙엽 밟는 소리에 가려졌던 소리들이 확장된 음질로 귓가로 다가온다. 빈 가지를 가만가만 흔들어대며 흐르는 바람소리가 부질없이 분주하다. 바람 소리가 바람 소리를 만나 단정한 리듬을 이어가고 있다. 적절하고 정연한 자연이 풀어내는 소리들이 팬데믹에 젖어있는 일상을 투명한 맑음으로 말끔히 건조시켜 준다. 발자국 소리까지 접어버린 숲이라 소리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가끔 새들의 기척만 느껴질 뿐 소리가 지워진듯 만상이 고요해졌다. 이렇듯 고요로움에 감싸여 있는 것이 평화로움의 찰라 누림이 아닐까. 소리와 소리의 어우러짐이 평화를 이끌어내고 소리와 소리가 화해할 때 비로소 평화가 정착될 것이다. 계절들이 들어서면서 앞세우는 소리, 계절이 떠나면서 남기고 가는 소리들의 얼개는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소리의 고저나 장단도 그러하려니와 소리 진폭이나 품고 있는 번뇌도 희열까지도 계절마다 달랐다.
깊은 밤, 들려오는 기차 소리는 마치 어두움을 기적으로 열어가듯 긴 여운을 끌고 다닌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기차 소리가 리듬 실은 음악으로 들려오기도 한다. 또르르 소리내듯 잎새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도 음악이 된다. 여린 바람에서부터 휘몰아치는 강풍에 이르기까지 지구 공전과 자전이 빚어낸 마찰음이 바람이듯 생소하든 익숙하든 존재하는 모든 소리에는 리듬과 선율과 화성이 있다. 모든 소리를 포용하며 음미하며 어우러지다보면 소리를 다스릴 줄 아는 자리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나 아닌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아름다운 화음을 창출해낼 수 있다면 충분히 경합할 줄도 알고 조절할 줄도 아는 분야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화음은 평화를 불러들이고 기쁨을 번지게 한다. 절대음감을 소유한자는 어떤 음에도 화음을 입힐 수 있는 능력이 있듯, 소리를 알고 관심을 갖고 경청할 줄 아는 자만이 소리와 친밀해질 수 있거니와 소리의 상수로 달인으로 군림할 수가 있다.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소리의 곡조 듣기를 거북스러워 한다면 자신이 내는 소리 외의 모든 소리를 거절하는 행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의 소리를 소중히 여길줄 아는 자라야 주변과 어우러질 수 있음이요, 소리에 소리를 더하는 화음을 낼 줄 아는 자만이 주변을 다스림할 수 있는 꿈을 가질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비대면 시한이 길어지면서 컴퓨터, TV, 유튜브 등 기기음에 익숙해지고 있다. 모임, 회의, 예배, 강의도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대화도 마스크를 통과한 투명하지 않은 소리 만남이라 왜곡되지 않은 본디 고유의 소리로 주고 받음이 절실해지는 즈음이다. 세상이 던져주는 소리는 알지 못한데서, 볼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라서 제대로 된 소리인지 피하고 싶은 소음인지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조현상 같다. 시대적 소음에 귀를 틀어막아야 하는 일도 빈번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수평선이나 지평선이 전부가 아니다. 다만 시선의 끝일 뿐이기에 세상 소음으로 인한 생의 누락에도 마음을 기울여야할 일이다. 소음에 삶의 동기력을 뺏앗기지 말아서 바르고 참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 걷는 법에 익숙해져야할 것이다. 좋은게 좋은게 아니라 옳은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람의 생각과 이념이 파동으로 부딪히며 그 파동이 화음을 연출해낸다면 더는 바랄바 없겠지만, 대부분은 불협화음으로 몰이해와 비루함과 참담함으로 옳음을 역주행해내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만상은 움직임의 진동으로 인한 파장과 울림이 있다. 모든 생명체의 맥동은 질서정연한 궤도가 있기 마련이라서 흐름에서 이탈하게 되면 평화로웠던 소리마저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언뜻 기계음 따위를 소음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근간의 모든 소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산물로 질서를 무너뜨리고 혼란과 공해로 뒤덮고 있다. 이기심으로 인한 뻔뻔한 소음들이 평화로운 인생들을 비방하고 괴롭히고 부딪치고 박살내는 소리 소리들이 처절할 만큼 요란하다. 살아있음의 방증이긴 하지만 귀를 막아야 제대로된 보폭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소리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하기 마련인 것인데.
호젓한 산책 길에서 귀에 담아보는 가지런한 소리처럼 세상 소음들이 제자리를 찾았으면 싶다. 새삼스럽듯 산책길에서 만난 소리들이 자연이 생성해내는 미세한 울림으로 뿜어져 나온다. 하얀 고요가 하늘이 열리듯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되어 쏟아져 내린다. 소리, 소리들의 정연한 난무가 이리도 평화로울까 싶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