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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의 세상읽기]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2-12 10:10:08

권정희,논설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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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굴복하는 게 지긋지긋했을 뿐이었지요.”

 

1955년 몽고메리 버스 사건을 회고하며 로사 팍스 여사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2월은 흑인역사의 달이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어떤 역할과 기여를 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짚어보는 기회인데, 짚어보다 보면 결국 닿는 곳은 아픔 - 억압과 착취, 차별로 이어진 기나긴 아픔의 역사이다. 흑인역사에 대한 인식 역시 아픔에서 시작되었다.

 

20세기 초 카터 우드슨이라는 총명한 흑인청년이 있었다. 전직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공부에 대한 일념으로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다. 역사를 전공하면서 그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역사에서 흑인은 쏙 빠져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오랜 세월, 그 많았던 흑인은 없는 존재였다.

역사를 알아야 발전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협회를 만들어 흑인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했고, 1926년 흑인역사 주간을 만들었다. 노예해방령을 선포한 에이브라함 링컨(2월 12일 생)과 노예 출신으로 노예해방운동의 선구자였던 프레드릭 더글라스(2월 14일)를 기리기 위해 2월 둘째 주를 기념주간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근 30년 후 앨라배머, 몽고메리에서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난다. 중년의 흑인여성이 버스에서 ‘당돌하게도’ 백인남성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한 것이었다. 일견 사소한 이 마찰이 흑인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대변혁의 물꼬가 될 줄은 당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팍스는 재봉사로 일하면서 남편과 함께 전국 유색인종지위향상 협의회(NAACP) 몽고메리 지부회원으로 민권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매일 버스로 출퇴근하는데, 시 조례상 버스 앞쪽은 백인구역, 뒤쪽은 흑인구역으로 분리되어있었다. 앞쪽 좌석이 다 차서 백인이 앉을 자리가 없을 경우 흑인은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1955년 12월 1일, 퇴근길. 팍스는 백인승객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버스기사의 지시를 묵살했다. 그대로 버티고 앉아 있다가 체포되었다. NAACP는 즉각 버스 보이콧을 주도했고, 12월 5일 팍스의 재판 날에 맞춰진 보이콧은 대성공이었다.

 

그날 밤 수천명이 모인 교회에서 젊은 목사가 설교를 했다. “옳은 일을 위해 항거할 권리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영광”이라는 사자후에 회중은 열광했다. 설교자는 바로 26세의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킹 목사 지휘 하에 버스 보이콧은 무려 381일이나 계속되었다. 흑인주민들은 흑인기사의 택시를 타거나 수 마일씩 걸어서 등교하고 출근했다.

 

보이콧은 이듬해 11월 연방대법이 버스 인종분리를 위헌으로 판시하면서 절정에 이르고, 12월 21일 몽고메리 시가 버스 내 흑백구역을 없애면서 종식되었다. 이로써 비폭력 저항운동의 첫 승리를 거둔 킹 목사는 여세를 몰아 60년대 민권운동을 정점으로 이끌었다.

 

시작은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였다. 불공정한 조치를 굴욕적으로 견디는 대신 담대하게 항거한 팍스의 시민불복종이 인종차별이라는 벽을 부수는 철퇴가 되었다. “팍스가 앉음으로써 킹은 걸을 수 있었고(시위행진), 킹이 걸음으로써 오바마는 달릴 수 있었다(대선출마)”는 말은 흑인지위 향상의 역사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아시안 커뮤니티가 부당함에 시달려온 지 근 1년이다. 코비드-19 감염증이 확산되면서 아시안을 희생양 삼아 분풀이하는 혐오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계 이민역사가 깊은 북가주에서는 특히 묻지마 폭행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의 예를 보면, 지난달 2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84세 남성이 떠밀려 넘어져 사망했고, 31일 오클랜드 차이나타운에서는 91세 노인이 뒤에서 밀쳐져 땅바닥으로 넘어졌고, 60세 남성과 55세 여성이 연이어 공격을 당했다.

 

사소한 이해관계도 없는 이들이 공격받은 이유는 하나, 팬데믹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가 ‘중국 바이러스’ ‘우한 바이러스’라며 중국을 부각시킨 것이 아시안 혐오범죄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 ‘황색 위험(Yellow Peril)’의 재부상이다.

 

‘황색 위험’은 아시안 혐오의 대명사. 19세기 후반 중국인 이민이 늘자 미국사회에는 ‘더럽고 무지한 황인종이 서구의 문화와 가치를 위협한다’며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 결과 1882년 중국인 배제법이 만들어지고, 1943년까지 중국인 이민이 금지되었다.

 

한인 등 아시안은 ‘모델 마이너리티’로 불린다. 그래서 우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착각이다. 미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위험한 황색 존재와 모범적 소수계 사이를 오간 것이 아시안 아메리칸의 역사이다.

 

입 다물고 견디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아시안은 고분고분 일만 잘 한다는 이미지를 벗을 때가 되었다. 아시안 혐오범죄에 대한 당국의 강력 대처와 미국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 커뮤니티의 권익을 지키는 길이자 미국사회를 정의로 이끄는 길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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