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 지원 등을 폐지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계획이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에 막혀 좌초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기차 관련 투자가 미국 공화당 우세 지역에 집중돼 있어서다.
12일 블룸버그통신은 현재 완료됐거나 진행 중인 주요 자동차 업체의 배터리 및 전기차 조립 공장 25개 가운데 19개가 공화당 하원의원 지역구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하원의원의 지역구인 나머지 6개 지역도 대부분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지원 정책을 폐기하려고 추진할 경우 이들 지역의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과 지역의 이익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지역 의원들이 우려하는 것은 전기차 수요 위축과 투자 축소로 인한 일자리 감소다.
조지아주의 경우 현대차 공장이 주내 최대 투자 프로젝트이며 도요타가 140억 달러를 투입하는 노스캐롤라이나 역시 이를 통해 5000명의 고용 창출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앞서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교수인 조지프 셔피로 등 연구진은 최대 7500달러의 세금 혜택이 사라질 경우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27%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제로배출교통협회 디렉터인 앨버트 고어는 “만약 미국이 일자리를 가져오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세제 혜택 같은 수요 정책이 필수적”이라며 “보조금이 폐지된다면 미국 내 일자리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해외투자가 줄어드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배터리·전기차 공장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의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구상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지아의 버디 카터 하원의원은 “무엇이 국내 제조업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공급망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정확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지역구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해당 정책의 문제점을 확실히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 임기를 시작하는 미국 하원의 의석 구조를 보면 공화당이 220석으로 민주당(215석)보다는 많지만 전기차 보조금의 혜택을 받는 일부 주의 의원들이 이탈할 경우 단독 법안 처리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내부에서도 절충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하원의 에너지·상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브렛 거스리 하원의원(공화·켄터키)은 “우리는 망치가 아닌 메스로 이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며 “신규 자금 지원은 중단하더라도 이미 약속한 보조금 지급을 번복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전략가인 론 본진은 “(지역 이해관계가 얽힌) 공화당 의원들은 얼마나 많은 일자리의 피해를 입을지 파악해 균형을 잡는 여러 정책 옵션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조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와 배터리 공장 건설 및 생산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IRA에 따른 보조금 정책을 비판해왔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정권인수팀이 소비자 세액공제 폐지를 논의한다고 보도했으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역시 최근 의회에 출석해 “모든 공제를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김흥록 서울경제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