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조윤성의 하프타임] 패배의 고통에 너무 매몰되지 말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11-06 13:48:27

조윤성의 하프타임, LA미주본사 논설위원, 패배의 고통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20세기 막바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세기말적 현상들 가운데 하나는 ‘정치의 종교화’이다. 정치가 점차 합리적 판단과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믿음과 맹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음모론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도덕적·윤리적 하자가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위법 행위로 사법적 판단을 받아도 무조건 옳다고 믿는 맹목적 추종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치가 마치 생사를 놓고 벌이는 물러설 수 없는 전쟁과 같은 양상으로 계속 변질돼 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로 그런 운명을 걸고 벌이는 건곤일척의 대회전이 바로 선거이다.

그런 만큼 선거 결과는 누군가에게 정치적 상처와 심리적 후유증을 남겨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상흔은 정치의 종교화 속에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왜 정치적 파워를 잃는 게 마치 나라를 잃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걸까”라며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던진 질문은 이런 심리적 상흔을 실감나게 표현해주고 있다.

선거패배가 극심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인간의 속성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행태과학자인 타드 로저스 교수는 이것을 ‘허위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로 설명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은 선거에서 양당 지지자들 모두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 여기는 믿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론조사나 미디어 예측 등과는 상관없이 거의 절반의 유권자에게 선거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로 다가오게 된다. 

로저스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선거패배에 따른 슬픔과 고통은 보스턴 마라톤 테러,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같은 폭력 참사들이 안겨주는 부정적 감정보다 두 배가량 더 크고 깊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정파성이 우리의 정신적·사회적 삶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지난 2016년 대선 후 한 정신과 의사는 지지후보의 패배를 지켜 본 자신의 환자들이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이렇게 기술했다. “그들은 패배가 악몽이 아닌 현실임을 깨달으며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다. 슬픔과 불안이 이들을 짓눌렀으며 일부는 침대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어떤 이들은 캐나다로 떠나겠다고 했으며 이른 아침부터 술로 분노를 달래기도 했다.” 이처럼 2016년 대선이 던진 충격파와 후유증은 어느 해 선거보다 크고도 길었다. 그러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PTSD)에 빗댄 ‘선거후 스트레스 장애’(Post Election Stress Disorder·PESD)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충격적인 선거 결과에 따른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지칭한 말이었다. 

실제로 당시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불안과 절망감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크게 증가했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희망과 열정, 그리고 기대를 후보들에게 투사한다. 선거철이 되면 유권자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거 전과 투표 당일에도 그렇고 결과가 나온 후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5일 미국의 주권자들은 앞으로 4년 동안 나라를 이끌어갈 다음 지도자를 결정하기 위한 선택에 들어갔다. 승패에 따라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고뇌가 엇갈리게 되었지만 그 교차하는 감정의 무게가 같을 수는 없다. 무엇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는 잃었을 때의 고통이 더 큰 법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기쁨이든 나쁜 일에 따른 고통이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분노하기 보다는 부정적 감정을 부추기는 행위들, 가령 뉴스시청이나 SNS 등은 당분간 자제하면서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같은 긍정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신체활동과 취미생활에 집중한다면 ‘선거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패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의연한 자세가 중요하다. 절망감에 찌들어 축 늘어져 있을 게 아니라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삶은 계속될 것이고 당신 앞에는 또 다른 선택의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LA미주본사 논설위원>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 아침의 시] 날의 이야기
[이 아침의 시] 날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 고영민  주말 저녁 무렵아내가 내민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러밖에 나왔는데아파트 옆 동 쪽으로 걸어가는할머니의 뒷모습에 깜짝 놀랐다영락없는 내 어머니였다돌아가신 지

[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옐프 전국 1위 식당
[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옐프 전국 1위 식당

첫날은 허탕을 쳤다. 미리 주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은 둘인데 주문 26건이 밀려 있었다. 지금 주문하면 한 시간 반쯤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25센트 동전 하나에

[전문가 기고] 한국의 전문간호사와 미국의 NP

최근 한국의 의료사태와 관련해 간호법이 국회에서 통과 공표되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의사협회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다며 적극 반대했는데도 여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간

[삶과 생각] 책임감
[삶과 생각] 책임감

책임감, 이거 없는 사람들 꽤나 있다.오늘 신문을 보니 후배의 부인상(喪配) 부고가 나왔다. 적어도 금혼(金婚)은 지났으리라.처음엔 사랑이요, 중반에 친구로, 후반엔 동반자로서 사

[삶과 생각]  애틀랜타 k – 글로벌 엑스포
[삶과 생각] 애틀랜타 k – 글로벌 엑스포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지난해 미주 상공인 총연합회장(이경철) 취임식을 애틀랜타에서 거행한 뒤 첫 사업으로 해외 최초로 한상대회를 LA오렌지 카운티에서 개최해

[시와 수필] 정직은 최선의 정책이다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볼 수 있고 들꽃 한 송이에서 하늘 나라를 보고우리의 손바닥에서 무한한 영겁을그리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본다   ( 시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

최선호 보험전문인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배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에 그를 미국 대통령으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