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생산지도 급속 변화
전 세계를 덮친 이상기후로 주요 작물의 생육 부진이 이어지며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은 물론, 재배 면적 감소·소멸 우려도 커지고 있다. 폭염·폭우·병충해 등 매년 ‘사상 최고’ ‘사상 최악’의 기록을 새로 쓰는 환경 탓에 ‘기후에 강한’ 다른 종(種)으로의 전작도 활발해지며 주식을 둘러싼 ‘생산 지도 변화’ 역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31일 런던국제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인스턴트용 커피 원두인 로부스타 가격은 27일 기준 1톤당 3599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스페셜티용인 아라비카 원두 가격도 지난해 12월 1파운드당 209달러를 넘기며 1년 2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28일에도 장중 191달러까지 뛰는 등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6개월간 140달러대에서 움직였다. 이 같은 상승은 잇따른 기상 악화로 커피콩 흉작이 이어지는 한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중산층 확대로 원두커피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미 농무성의 지난해 12월 수급 보고를 보면 로부스타종 최대 생산국인 베트남의 2023~2024년 예상 생산량은 이전 보고서(2023년 6월) 전망 대비 12% 줄었다. 세계 3위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의 2023~2024년 생산량도 전년도 대비 20% 줄 것으로 전망된다.
커피 콩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작물이다. 특히 커피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라비카종은 병충해나 기온 변화에 약한 것이 특징이다.
아라비카종은 밤낮의 일교차가 있는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데 고온 현상과 폭우·가뭄 같은 기상 변수로 농사를 망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작물이 자랄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면서 ‘재배 적합지’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영국의 비영리 자선단체인 크리스천 에이드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상승하는 기온과 예측 불가의 상황으로 커피 재배에 적합한 세계 토지는 2100년까지 54.4%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2도로 제한한다’는 국제 합의 목표를 준수한다는 전제하의 추산이다. 지금처럼 매년 ‘최고 기온 경신’ ‘기록적인 폭염’의 상황이 이어지면 재배지 절반 감소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10년 전인 2014년 미국 커피 연구기관인 월드커피리서치(WCR)는 기상 문제 때문에 현재 아라비카 커피 생산에 적합한 토지 절반이 2050년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브라질·인도·중앙아메리카 일부 지역처럼 건기가 길고 더운 지역의 경우 현재 커피 재배 지역의 80% 가까이가 ‘부적합지’로 바뀐다고 봤다. 이렇다 보니 일부 농가는 안정적인 생산 및 수입을 위해 커피 대신 기후변화에 강하거나 수요가 더 많은 다른 작물로의 ‘전작’을 진행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동남아에서는 엘니뇨에 따른 날씨 리스크 때문에 커피콩 농가가 주 생산 품목을 천연고무·두리안으로 바꾸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때 ‘1등 쌀’로 손꼽혔던 고시히카리가 기후변화에 그 위상을 위협받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47개 도도부현 중 17곳이 올봄 모내기에서 고시히카리 재배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폭염으로 품질 저하를 겪은 탓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품질 저하에 따른 공급 및 가격 피해를 줄이기 위해 더위에 더 강한 품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닛케이 조사 결과 ‘지난해 대비 경작 면적을 줄이겠다’고 답한 곳은 17곳으로 ‘평년 수준’ 5곳, ‘증가’ 2곳, ‘재배 안함 또는 미정’은 23곳이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56년 탄생한 고시히카리는 처음 병충해에 강한 품종으로 보급됐으며 이후 단맛과 찰기까지 인정받으며 각지로 재배가 확산했다. 고시히카리의 경작 비율은 2022년 기준 전국 33.4%로 압도적이며 품종 개량 계통까지 합쳐 시장점유율이 80% 이상이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겪으며 쌀알이 변색(백탁)되는 등 피해가 나타났고 1등급부터 규격 외까지 총 4단계로 평가되는 품질 평가에서 1등 비율이 61.3%로 전년(2022년) 대비 17.3%포인트 떨어졌다.
<송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