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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히어로들이 아프게 꼬집은 미국의‘인종차별’세태

미국뉴스 | 기획·특집 | 2021-09-21 08:41:40

수퍼히어로, 인종차별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 드라마에 비친 미국

1986년 출시된 동명의 만화가 원작

‘털사 흑인 대학살’을 모티브로 전개

경찰 수십 명이‘백야’에 살해당하자

모든 경찰 마스크 쓰고 신분을 숨겨

살아남은 주인공 안젤라, 진실 추적

편향된 인종우월주의 신랄하게 비판

‘에미상 11개 부문 수상’작품성 인정

‘왓치맨’은 원작의 사건에서 34년 뒤인 2019년이 배경이다.             <HBO>
‘왓치맨’은 원작의 사건에서 34년 뒤인 2019년이 배경이다. <HBO>

웨이브에서 공개된 HBO의 드라마‘왓치맨(2019)’은 2009년 개봉한 영화‘왓치맨’의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로스트’‘스타 트렉’‘프로메테우스’ 등에 참여했던 제작자 데이먼 린델로프는 드라마‘왓치맨’이 영화의 원작인 코믹스‘왓치맨(1986)’의‘리믹스’라고 이야기했다. 원작을 리부트하여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앨런 무어가 쓰고 데이브 기본스가 그린 ‘왓치맨’은 타임지 선정 ‘1923년 이후 발간된 100대 소설’에 만화로는 유일하게 오른 걸작이다. 시대 배경은 코믹스가 나온 1980년대 중반인데, 실제 역사와는 다른 평행 세계다. 미국은 닥터 맨해튼의 도움으로 베트남전에서 승리했고,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는 대신 3선을 이룬 후 법을 고쳐 5선에 성공하여 여전히 대통령이다. 미소냉전은 당장 내일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왓치맨’에 등장하는 수퍼히어로들은 닥터 맨해튼을 제외하면 초월적 힘을 가진 이가 거의 없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망토를 둘렀다. 내면의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범죄에 대한 분노 때문에 혹은 단지 유명해지고 대중의 찬사를 받고 싶어서. ‘왓치맨’의 수퍼히어로는 대중이 숭배하는 정치인, 연예인, 운동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자경단이 되기를 원했고, 일종의 연예인이 되기를 자처한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킨 법안이 나오면서, 정부의 통제를 받는 닥터 맨해튼과 코미디언을 제외한 수퍼히어로의 활동은 금지되었다.

‘왓치맨’은 람보 같은 존재인 코미디언이 은퇴 후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로르샤흐 이미지가 그려진 마스크를 뒤집어쓴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의 살인이 우발적이거나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판단하고 홀로 범인을 추적한다. 로어셰크는 은퇴를 거부하고 홀로 악을 처단해 왔다. 수퍼히어로와 빌런의 경계에 선, 폭력으로 악을 처단하는 고독한 반영웅. 이어서 닥터 맨해튼이 음모에 빠져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태가 일어나자, 은퇴했던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 등의 히어로들이 나서게 된다. 그러나 선이 뭉쳐 악을 처단하는 스펙터클한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정체성에 대한 회의에 빠지면서 더욱 혼돈이 격화된다.

드라마 ‘왓치맨’은 원작의 사건에서 34년 뒤인 2019년이 배경이다.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크로퍼드 경찰서장이 목매달려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털사의 경찰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3년 전 극우단체인 제7기병대가 경찰 명단을 입수하여 크리스마스 밤에 수십 명을 살해한 ‘백야’ 사건이 있었다. 이후 킨 의원이 발의한 경찰보호법이 만들어져 모든 경찰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신분을 숨기게 되었다. 경찰 일부는 시스터 나이트, 루킹 글라스 등의 닉네임을 쓰며 수퍼히어로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미국의 52번째 주가 된 베트남에서 남편 칼과 함께 털사로 온 안젤라는 ‘백야’에 습격을 당했던 경찰이다. 겨우 살아남은 그는 시스터 나이트가 되었다. 크로퍼드와 막역한 사이였던 안젤라는 밤중에 연락을 받고 나갔다가 크로퍼드의 시신을 발견하고, 나무 아래에서 휠체어에 탄 흑인 노인을 발견한다. FBI 요원 로리 블레이크는 크로퍼드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털사에 파견된다. 과거에 2대 실크 스펙터였고, 지금은 자경단을 체포하는 전담반을 이끌고 있다.

‘왓치맨’은 1921년 털사에서 벌어진 흑인 대학살에서 시작한다. 흑인들은 그린우드 지역에 독자적인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여 ‘블랙 월스트리트’라고 불리게 되었다. 질투한 백인들은 조직적으로 그린우드를 습격하여 150명이 넘는 흑인을 학살했다. 털사의 흑인 대학살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이지만 ‘왓치맨’의 방영 이후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왓치맨’에서는 대학살 이후 인종차별 피해자보호법이 나왔지만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유색인종을 몰아내자는 백인우월주의 단체 제7기병대는 백인 하류층만 지지하는 조잡한 모임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경찰 등도 소속된 거대한 단체다.

‘왓치맨’의 주인공은 흑인인 안젤라이고, 털사 대학살은 그의 인생은 물론 지구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왓치맨’의 세계에서 처음 등장한 수퍼히어로는 ‘후디드 저스티스’다. 후디드 저스티스는 검은 두건을 쓰고 목에는 밧줄을 감고 있다. 그는 털사 대학살에서 겨우 살아남은 아이였고, 성장하여 경찰이 되었지만 법의 힘만으로 정의를 구현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경단이 되기로 작정한다. 후디드 저스티스의 역사는 곧 수퍼히어로의 역사다. 세상의 정의를 원하여 마스크를 썼지만 결국 마스크를 쓴 존재는 악당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어진다. 심하게 타락하지 않아도,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악당과 별다르지 않다.

제7기병대는 과거 로어셰크가 썼던 마스크를 쓰고 있다. 로어셰크는 히어로와 악당, 선과 악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실현했다. 로어셰크의 사상이 제7기병대로 이어지면, 끔찍한 악의와 차별을 자신들이 구현해야 할 정의라고 믿는 악의 집단이 된다. 로어셰크가 극우 인종차별주의자의 상징은 아니었지만, 멋대로 해석한 ‘백인 쓰레기’들이 신봉하는 그릇된 신념이 된다.

경찰이며 ‘루킹 글라스’인 웨이드는 복잡한 인물이다. 어릴 때 보수적인 기독교 집단에 있었던 웨이드는 선교 활동으로 뉴욕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다. 미소 핵전쟁 공포가 극에 달했던 1985년, 갑자기 외계의 존재가 정신파 공격을 감행하여 뉴욕 인구의 절반인 300만 명이 죽어버렸다. 웨이드는 겨우 살아남았지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때 알코올중독이었고, 아내에게 버림받아 이혼했고, 악당들을 잡는 ‘히어로’이면서도 늘 미지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제7기병대의 일원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이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웨이드는 선한 쪽을 택한다. 히어로이기 때문이 아니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일념 때문도 아니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웨이드는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진실을 한 조각씩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성실한 인간이다.

‘왓치맨’은 ‘감시자를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원작의 테마를 유지하면서, 인종차별로 대표되는 현실의 혐오와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계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현실의 추악한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왓치맨’은 방영 후 에미상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에서 2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작품, 각본, 여우주연, 남우조연 등 11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지극히 미국적인 작품이라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왓치맨’이 차별과 혐오라는 주제를 수퍼히어로 장르에 탁월하게 녹여낸 수작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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