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억만장자 브랜슨‘민간인 1호’
승객 3명과 우주 공간 무중력 체험
1인당 2억8,000만원 600명 예약
20일 베이조스 우주로켓 탑승하고
9월엔 머스크 스페이스X 궤도 비행
“우주로 초대”티켓 판매 본격 경쟁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던 아이는 이제 우주선을 타고 아름다운 지구를 내려다보는 어른이 됐다. 꿈을 가진 다음 세대 여러분, 우리가 상상한 것을 이렇게 이룰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11일 영국의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71) 버진그룹 회장은 자신이 설립한 우주관광기업 버진 갤럭틱이 쏘아 올린 우주 비행선에서 지구촌 젊은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는 의자 안전벨트를 풀고 공중으로 떠오르며 ‘우주 유영’을 시작했다. 동행한 조종사와 직원들도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민간 우주관광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시범 비행이긴 하지만, 브랜슨이 우주 가장자리에까지 오르며 첫 테이프를 끊는 데 성공했다. 9일 후엔 제프 베이조스(57) 아마존 창업자도 도전에 나선다. 우주관광을 둘러싼 억만장자들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셈이다.
”새 우주 시대의 새벽 열렸다”
브랜슨은 이날 오전 7시 40분(미국 서부 기준) 미국 뉴멕시코주(州) 스페이스포트 우주센터에서 회사 소속 비행선 ‘VSS 유니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는 18일 71세 생일을 맞는 그는 굉음과 함께 암흑으로 뒤덮인 우주 공간을 향해 마하 3(음속 3배)의 속도로 솟구쳤다. 고도 53.5마일(86.1㎞) 상공에 도달한 뒤에는 4분간 사실상 무중력인 ‘미세 중력(microgravity)’ 상태를 경험했다. 탑승객들은 공중을 떠다니며 비행선 창문 12개를 통해 지구와 우주를 관찰했다.
사상 첫 우주 관광에 소요된 시간은 1시간. 비교적 짧은 듯하지만, 지구로 귀환한 브랜슨의 소감은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다. 그는 “우주에 가는 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마법 같았다”며 “새로운 우주 시대의 새벽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이로써 그는 인류 역사상 우주 관광을 한 ‘민간인 1호’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됐다.
다만 일각에선 그의 도전이 ‘진정한 우주 여행’은 아니라고 평가절하한다. 유럽 국제항공우주연맹에선 고도 62마일(100㎞)인 ‘카르만 라인’을 넘어야 우주로 정의하는데, 이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버진 갤럭틱 측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고도 50마일(80㎞) 이상을 ‘우주의 경계’로 본다는 점을 들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상업용 우주시대 개막
브랜슨을 시작으로 세계의 억만장자들이 주도하는 우주 관광시대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이달 20일에는 우주탐사 기업 ‘블루 오리진’을 창업한 베이조스가 직접 우주 관광에 나선다. 버진 갤럭틱보다 더 높은 고도 100㎞까지 올라갈 예정이다. 일론 머스크(50)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설립한 우주 탐사기업 스페이스X도 오는 9월 일반인 4명을 우주선에 태워 지구를 공전하는 궤도비행에 도전한다.
버진 갤럭틱 또한 내년부터는 본격 우주 여행 상품을 출시한다. 이미 600명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 역시 ‘경쟁사’인 버진 갤럭틱의 우주 여행 티켓을 구매했다.
19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나선 지 꼭 60년 만에 ‘상업용 우주 시대’가 개막한 셈이다.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2030년까지 우주 여행 산업이 연간 40억 달러(약 4조5,800억 원)의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로켓과 위성 기술 발전에 힘입어 한때 정부 영역이던 곳에 이젠 기업과 금융가가 침투하고 있다”며 “이들은 별(우주)에서 막대한 부를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다. 버진 갤럭틱 우주 여행 대기자들은 1인당 약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를 냈다. 앞으론 더 상승할 것이라는 게 외신의 관측이다. 블루 오리진은 아직 푯값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베이조스와 함께 우주를 관광하는 티켓은 경매에서 2,800만 달러(약 312억6,000만 원)에 낙찰됐다.
자산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선 지불 자체가 불가능한 금액이다. 우주 관광 대중화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 탓에 현재로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우주 비행) 경험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단 몇 분의 여행을 위해 집 몇 채 비용을 기꺼이 쓸 사람이 몇이나 될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