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등장은 수십 년간 전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떠받쳐온 이념인 신자유주의 퇴조를 가속할까.
워싱턴포스트(WP)는 5일 `바이든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쇠퇴'라는 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행보는 서구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적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런 흐름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혼돈스러운 시기에 등장하고 있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의 혼란과 파멸 속에 구체적 형태를 갖췄다고 말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뜻하는 '큰 정부'와 복지 확대를 추구해온 케인스주의는 197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에 밀려났다.
당시 전 세계 불황과 맞물려 득세한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시장 개입의 폐해를 지적하며 '작은 정부'를 지향했고, 감세와 각종 기업규제 완화, '세계화'로 대표되는 글로벌 자유무역주의를 옹호했다.
주로 공화당이 중시해온 핵심 가치들이 대거 반영된 것이지만,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민주당 출신 대통령도 큰 틀에선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이제 겨우 취임 70일을 넘긴 바이든 대통령은 기존 신자유주의 기조와 상당 부분 벗어난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1조9천억 달러짜리 경기부양 예산안을 확보했고, 2조2천5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예산을 의회에 제시했다. 한국의 올 한해 예산이 560조 원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금액이다.
경기부양안이야 코로나19 회복에 필요한 긴급 처방이어서 일시적인 예산 투입이라고 치더라도 인프라 예산은 미 정치권이 풀지 못한 오랜 숙제에 바이든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는 그동안 재원 확보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법인세와 고소득자의 소득세 인상이라는 증세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각국의 법인세 인하 경쟁에도 제동을 걸기 위해 하한선 설정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 작은 정부와 감세라는 신자유주의와 다른 흐름이자, 정부의 적극적 역할과 개입을 강조하는 기조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롤 모델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린든 존슨 전 대통령 역시 큰 정부를 옹호하는 이들이었다.
WP는 신자유주의 유산을 폐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이든의 태도가 무역 정책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면서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상원 인준 청문회 발언을 소개했다.
타이 대표는 무역합의의 목표가 관세와 무역장벽 제거가 돼야 하냐는 질문에 5년이나 10년 전이라면 '예스'라고 답했을 것이라면서 전염병 대유행,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에 대한 반감을 언급한 뒤 "무역정책은 최근래 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웠다는 교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이면에는 미국 제조업의 쇠퇴와 노동자의 실직, 소득 감소 등 고통이 뒤따랐던 만큼 무역 정책도 이를 보살피고 개선하며 '미국 중산층 재건'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바이든의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올 초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무역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50년 가까운 정치 역정에서 신자유주의 질서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바이든의 기조와 극적으로 달라진 것이라고 WP는 평가했다.
WP는 "바이든은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인플레이션 압력을 경계하는 공화당, 민주당 중도파로부터 의회에서 힘든 전투에 직면했다"면서도 그의 포부는 수십 년간 '월가의 신자유주의 정당'이던 민주당의 변화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류지복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