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는 길은 북한강을 거슬러 오른다. 남양주와 양평의 경계인 두물머리부터 가평을 지나 춘천까지, 경치로 보면 어느 한 자락 빠지는 곳이 없다. 강 주변 전체가 수도권 주민에게 사랑받는 관광지다. 그러나 강에서 조금 벗어나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청평에서 포천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로 접어들면 강원도에 버금가는 깊은 산골이다. 운악산(936m)과 축령산(886m)에 둘러싸인 골짜기에 가평 상면과 조종면이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이 넓어 행정구역상 2개 면으로 분리돼 있지만, 면사무소 사이 거리는 불과 2km가 되지 않는다. 사실상 한 동네나 마찬가지다.
■한겨울에 더 푸른 국내 최대 잣나무 숲
아침고요수목원은 축령산 자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나들이 장소다. 1995년 개설한 국내 1세대 수목원으로 숲과 어우러진 20여개의 특색 있는 정원을 보유하고 있다. 가평 상면으로 나들이 가는 차량의 최종 목적지는 대부분 이 수목원이다.
바로 인근에 이와 대비되는 잣향기푸른숲이 있다. 아침고요수목원이 여행객을 불러들일 목적으로 조성된 시설인데 비해 잣향기푸른숲은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 숲을 위한 숲이다. 국내 최대 잣나무 숲으로 인공조림이지만 자연에 가깝게 유지돼 왔다. 터는 넓은데 방문객은 많지 않다.
이곳 잣나무 숲은 1930년대 초부터 우수한 종자를 생산하기 위한 채종림으로 조성됐다. 잣나무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 동부에 자생하는데 한국의 경우 지리산 이북 높은 산지의 능선에서 주로 자란다. 비교적 차가운 기후에서 잘 자란다는 뜻이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5만여 그루의 잣나무가 축령산 동편 자락을 빼곡하게 덮고 있다. 2014년 일반에 개방하면서 잣향기푸른숲으로 명명하기 전까지는 ‘축령백림’으로 불렸다. 백림(柏林)은 기본적으로 측백나무 숲을 이르는 말이지만, 잣나무 숲을 지칭하는 한자어이기도 하다. 사계절 푸르른 잎보다 쭉쭉 뻗은 나무 기둥에 주목한 작명이다.
잣나무푸른숲은 해발 450~600m사이 산악 지형을 활용한 산림휴양시설이다. 그렇다고 힘들게 등산을 해야 할 수준은 아니다. 주차장에서 방문자센터까지만 걸어도 겨울 숲의 정취에 흠뻑 빠져든다. 봄의 상큼함이나 여름의 눅진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맑고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기운에 머릿속까지 개운해진다. 천천히 숲길을 거닐면 그 자체가 녹색 건강 샤워다.
방문자센터에서 축령산 바로 아래 사방댐까지 여러 갈래의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순환 임도를 기본으로 어린이도 걷기 좋은 유치원생코스(1.13㎞)부터 조금 가파른 성인코스(4.05㎞)까지 다양하다. 샛길이 워낙 많아 일부 구간에선 끝까지 걸어도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을 정도다. 몇몇 한적한 오솔길에는 ‘명상공간’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혹시라도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데 그럴 염려는 없다. 모든 길은 결국 만나게 설계돼 있고, 갈라지는 지점마다 현재 위치가 표시된 탐방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1970년대까지는 이 깊은 산중에도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6가구가 살았던 숲 중턱에 너와집과 귀틀집, 숯가마를 복원해 놓았다. 그 살림살이가 오죽했을까만, 전시 가옥은 하룻밤 쉬어가고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번듯하다. 화전민 마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최종 목적지인 사방댐이다. 산사태나 홍수를 막기 위한 용도에 충실한 이름이어서 다소 멋이 없는데, 호수의 정취는 일품이다.
치유의 숲이지만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매점과 숙박시설은 아예 없고 야영도 허용되지 않는다. 경사진 일부 구간에 나무계단과 목재 덱이 설치돼 있고, 한적한 숲길에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을 뿐이다.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지고 마음은 가볍고 여유롭다. 단돈 1,000원의 입장료로 숲을 통째로 누리는 셈이다.
잣향기푸른숲은 산림 치유와 숲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방문객이 적은 겨울철에는 이마저 쉬기 때문에 더욱 한산하다. 잣나무 숲은 언제가 가장 좋을까? 이곳 해설사는 “자신이 방문한 바로 그 시간”이라고 말한다. 나무와 숲은 계절 따라, 시간에 따라 색과 질감이 다르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느끼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동절기에는 오후 5시면 주변이 어둑해진다. 오후 4시 전 하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이 정기 휴일이지만 폭설이나 기상 악화 때는 예고 없이 문을 닫을 수 있다. 031-8008-6769 또는 6771로 문의.
■순국열사 3인 모신 신라고찰 현등사
상면과 조종면은 고려 현종 때부터 가평과 구분되는 조종현(朝宗縣)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종은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동시에 중국에서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행위를 뜻한다. 면소재지 인근의 조종암이라는 바위도 지명의 유래를 뒷받침한다. 글씨를 새긴 커다란 바위 앞에 비석을 세우고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바위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베풀어 준 은혜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을 잊지 말자는 뜻의 여러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선 숙종 10년(1684)에 새겼는데, 당시의 숭명배청(崇明排淸) 사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니 대놓고 자랑할 거리는 못 된다.
조종면의 진짜 자랑거리는 경기도의 소금강이라 할 정도로 바위 봉우리가 험하고 아름다운 운악산이다. 산 중턱에 현등사라는 고찰이 있다. 절 귀퉁이에는 보통 사찰과 인연이 깊은 고승들의 부도탑이 자리하게 마련인데, 현등사 입구에는 가평 향교에서 세운 삼충단이 있다. 구한말 일제에 무기력하게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익현, 조병세, 민영환 3명의 순국열사를 추모하는 시설이다.
을사조약을 반대해 의병을` 일으켰다가 유배지인 대마도에서 단식으로 절명한 최익현은 운악산 너머 포천이 고향이다. 역시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한 조병세는 인근 청평에서 말년을 보냈다. 민영환은 조약 폐기를 주장하며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고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는데, 현등사 계곡에 그가 누워서 나라 잃은 탄식을 했다는 넓은 바위가 있다. 바위에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다는데 지금은 희미해져 맨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외세에 목숨으로 항거한 인물을 기리는 시설이니 조종암과 극명히 대비된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에서 온 승려 마라가미를 위해 지었다는 고찰이다.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고려 희종 6년(1210) 지눌 스님이 주춧돌만 남은 절터의 석등에서 불이 꺼지지 않고 있음을 보고 중창한 후 현등사라 했다고 한다. 악산의 가파른 경사에 위치해 터가 좁은 편이어서 전각도 많지 않고 소담한 편이다. 마라가미 승려가 가져 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 아래로 다섯 채의 전각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있다. 그래도 보물로 지정된 동종과 함께 경기도 유형문화재를 7점이나 보유하고 있으니 작지만 큰 사찰이다. 108계단 위 삼층석탑 앞에 서면 깊은 산중의 짧은 겨울 햇살이 따스하게 비친다.
<가평=글ㆍ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