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대법원이 12일 낙태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을 금지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도 대법관 성향에 따라 보수 6 대 진보 3으로 정확히 갈렸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소송은 잇따라 기각하며 정치적 쟁점에는 거리를 뒀지만, 낙태 같은 논쟁적 사안에서는 ‘보수절대 우위’로 재편된 대법원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총기, 성소수자 등 찬반여론이 팽팽한 다른 이슈들도 줄줄이 대법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어 출범을 앞둔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연방 대법원은 이날 의료시설을 직접 방문해야 임신중절 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는 연방 식품의약국(FDA) 규정을 복원해달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미국에서 임신 초기 자연유산을 유도하는 ‘미페프리스톤’을 받으려면 병원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단순 처방을 위해 병원을 찾는 것은 감염 위험을 높인다며 FD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그해 7월 메릴랜드주 연방법원 판사는 우편이나 배달로도 해당 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게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곧장 항소했고, 대법원이 결국 원상복귀를 명령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보수 쏠림으로 바뀐 대법원 구도를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규정 복원 요청을 보류했다. 그러나 같은 달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이념적 성향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재편됐다. 이날 판결 결과와 일치한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여성의 낙태 권리 차원이 아닌 감염병의 영향이 기존 규정을 제한할 수 있는지 판단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진보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낙태약 조제를 제한하는 당국 규정이 “부당하고 비합리적”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잔뜩 꼈다. 이미 대법원은 바이든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나 기업 개혁 등에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여기에 의료보험 확대, 총기 소유, 성소수자 권리 등 판결 파장이 큰 사안들에서도 대법원은 보수적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연방 상ㆍ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진보정책을 통과시켜도 소송전으로 비화할 경우 대법원이 퇴짜를 놓으면 시행이 좌초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초당파적 위원회를 구성해 개혁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연방대법원 시스템을 손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긴 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이(대법원)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ACLU의 이날 성명에서 보듯, 개혁 성과가 미진할 경우 진보 진영의 거센 비판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