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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의 위기감… 제2의 트럼프 언제든 나올 수 있어

미국뉴스 | 기획·특집 | 2020-11-18 10:10:08

미국,백인,위기,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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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 종교보다 더 굳어져

공화당 ‘백인 민족주의’ 정당화

소수계 적대·강한 지도자 원해

 

지난 11월3일 투표가 끝나고도 며칠 간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던 미국 대선 결과를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따뜻한 토요일 오전 이웃들이 지르는 환호성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매디슨이 있는 위스콘신 주 데인 카운티는 76%가 바이든 후보에게 투표한 민주당 초강세 지역이다. 오후에 산책길에 만난 이웃들이 한결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 뿐 아니라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우려스럽게 지켜보았던 지구촌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 같다.

바이든 후보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결과는 충격적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법치주의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 실패해 25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도, 7,000만 명이 훨씬 넘는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 재선에 성공할 뻔 했다는 것이다. 최종 득표수에서 바이든 당선자가 500만 표 이상 앞서지만,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 때문에 몇몇 경합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금만 더 표를 받았어도 다른 선거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런 결과는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에게 투표했던 2016년과 달리, 7,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방향으로 미국을 끌고 갈 지 명확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지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백인 중심 민족주의와 종교가 된 정치

현대 미국 정치에서 지지 정당은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공고한 사회적 정체성이 되었다. 공화당 지지자, 민주당 지지자라는 정체성이 마치 이탈리아계나 라틴계 미국인 같은 인종적 정체성, 혹은 기독교인 같은 종교성 정체성보다 더 강한 정체성이 된 것이다. 지지 정당의 성향이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에 맞지 않으면 지지 정당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념이나 종교를 버린다. 지난 30여년 미국 사회의 큰 사회적 변화 중 하나가 무종교인의 급증인데, 종교사회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미국 기독교의 정치적 보수화를 꼽는다. 기독교가 보수화되면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은 미국인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다. 두 정당 열성 지지자들은 자녀가 종교나 인종이 다른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은 괜찮아도 상대 정당 지지자와 결혼하는 것은 반대한다.

이런 정치의 양극화가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공화당이 백인 민족주의 정당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래리 바르텔의 최근 논문에 의하면 공화당 지지자 대다수가 미국사회에서 위협받는 백인의 지위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고, 그로 인한 인종적 적대감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잠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실시한 설문 자료를 분석했는데, 60%가 넘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위협받고 있는 전통적인 미국적 삶의 양식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고, 74%가 더 이상 선거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이런 비민주주의적 태도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게 소수 인종과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다. 흑인, 이민자, 라티노들이 정부로부터 지나치게 관대한 지원을 받고, 흑인들은 인종차별을 모든 문제에 대한 변명거리로 삼고 있으며,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생각하는 백인 공화당 지지자일수록, 강력한 지도자가 법을 어겨서라도 목적을 이루고 애국자들이 직접 나서 나라를 지켜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불복과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개표소에서 시위하는 지지자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백인 사회의 위기

이런 공화당 지지자들의 인종적 적대감과 백인 민족주의는 긴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백인 인구 비율이 50% 아래로 떨어져 미국 사회에서 지배적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백인들이 2050년이면 소수가 된다는 인구 전망에 대한 뉴스를 읽기만 해도 소수 인종에 대해 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실험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고조되는 백인 사회의 위기 의식의 바탕에는 더 심각한 원인이 있다.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튼은 ‘절망의 죽음’이라는 책에서 백인들, 특히 대학 졸업장이 없는 노동 계층과 저소득층 백인들의 기대수명이 20세기 이후 최초로 감소하고 있고, 그 주요 원인이 약물 및 알코올 중독과 자살임을 밝히고 있다. 대학 졸업장 없이 좋은 직장을 찾기 힘들고 새로운 경제적 기회가 주로 동서부의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내륙지역 러스트 벨트의 중소 도시와 시골의 지역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이 더 깊은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하이오에서 53%를 얻어 바이든 당선자를 8%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이겼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경합주였고 오바마 대통령이 두 번 다 이겼던 오하이오가 공화당의 오랜 아성인 텍사스보다 더 붉은 주가 된 것이다. 오하이오에 사는 코미디언 데이비드 샤펠은 오하이오가 미국 원주민의 언어로 ‘가난한 백인’을 뜻한다고 농을 쳤는데, ‘절망의 죽음’으로 무너지는 지역 공동체에 사는 이 ‘가난한 백인’들의 인종적 적대감과 백인 민족주의가 오하이오가 공화당의 새로운 아성이 된 사연이다.

 

■역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이런 보수적 백인사회의 위기와 인종적 적대감에 기반한 공화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 그리고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 소수파에게 많은 권력을 허용하는 정치제도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하게 했고, 그 조건들은 트럼프가 사라져도 계속 남을 것이다. 제2의 트럼프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생떼를 쓰고 있는 데도 공화당 지도부가 침묵을 지키는 것도 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어서 그렇다.

어려운 상황에서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 우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효과적인 백신이 올해나 내년 초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백신이 나올 때까지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고 백신을 효율적으로 배포해 발빠르게 바이러스의 불길을 잡는 리더십을 통해 지지층의 사기와 정권 초기 지지도를 높게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승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든 당선자는 이미 명망있는 전문가들로 코로나바이러스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정치적 갈등의 초점을 정체성의 정치에서 돈주머니의 정치로 옮겨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정체성의 정치는 어쩔 수 없이 정치의 장에서 감정의 온도를 높이고 타협을 어렵게 만든다.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를 선과 악의 싸움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물론 정체성의 정치는 인종과 성적 평등 같은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정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민주당 정치인들은 정체성의 수사를 자제하고, 최저임금 인상, 부자 증세, 건강보험 확대와 같은 대중의 지지도가 높고 대학 졸업장 없는 노동 계층과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기 전 집중했던 이슈도 경제적 정의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어느 것도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고 보수파가 연방 법원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바이든 행정부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임채윤 위스콘신대 사회학과 교수>

 

백인들의 위기감… 제2의 트럼프 언제든 나올 수 있어
지난 14일 워싱턴 DC에 모인 트럼프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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