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48)씨는 대변을 보고 난 후 변기에 있는 물이 빨갛게 변했다. 치질로 여겨 뒤늦게 병원을 찾았다가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대장 중 항문에서 15㎝ 이내로 곧게 뻗은 부위인 직장에 생긴 암(직장암)은 항문과 가깝기에 암이 생기면 이처럼 혈변을 보기도 한다. 혈변 등 항문 출혈은 대부분 항문 안팎에 생긴 질병인 치질(치핵ㆍ치열ㆍ치루)이 대부분의 원인이다. 이 때문에 치질로 여겨 방치하다가 뒤늦게 대장암 진단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한대장항문학회가 지난 4~6월 항문 출혈로 전국 24개 병원을 찾은 10~89세 467명(평균 49세)을 조사했다. 그 결과, 항문 출혈로 내원한 환자 가운데 암으로 진단된 환자는 4.7%에 그쳤다. 대부분 치핵(67%)ㆍ치열(27.4%)로 대부분 양성 질환이었다.
◇항문 출혈, 1개월 넘으면 대장암 의심을
대한대장항문학회가 실시한 이번 설문 조사에서 대장암으로 진단된 36~89세 65명(평균 67세)의 항문출혈 색깔은 선홍색 71%, 검붉은색ㆍ갈색ㆍ흑색 29%였다. 출혈량은 대변 겉이나 휴지에 묻는 정도 66%, 변과 섞여 나옴 14%, 변기에 떨어질 정도 12%, 물총처럼 뿜어질 정도 5%, 핏덩어리로 나옴 3% 순이었다.
또한 이번 설문 조사에서 항문 출혈이 시작된 시기는 1개월~1년 미만 61%, 1년 이상 23%, 1개월 이내 16%였다. 출혈 외 증상은 61.5%에서 나타났다. 세부 증상(중복 응답)은 잔변감(29%), 변비ㆍ설사 등 배변 습관 변화(25%), 체중 감소(23%), 항문 통증(17%), 점액변(6%), 항문 가려움증(5%), 항문 덩이(3%), 복통(3%) 등이었다. 암 덩어리 때문에 대장이 좁아져 변이 가늘게 나오기도 한다.
이석환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외과 교수)은 “항문 출혈이 1개월 넘게 계속되거나 변 색깔이 검붉거나 검은색이라면 대장암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50대부터 3~5년마다 대장내시경 검사해야
지난해 12월 발표된 국가암등록정보 통계에 따르면, 대장암은 위암에 이어 암 발생률 2위를 기록했다. 연간 2만8,000여명이 대장암에 걸린다. 전체 암의 12% 정도로, 발생률 1위 암인 위암보다 1%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50대 21.2%, 60대 25.9%, 70대 26.0%로 50대 이후에 대장암 환자가 크게 늘어난다.
대장암 원인은 크게 식습관 같은 환경적 요인과 가족력으로 구분한다. 대장암의 80% 정도는 동물성 지방 등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을 자주 먹거나 비만ㆍ흡연ㆍ음주 등 나쁜 생활습관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암의 발생률과 관련 있는 요소 가운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열량 섭취, 식습관, 운동, 흡연, 과음 등이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대장암의 66~75%는 식습관과 운동으로 예방할 수 있다.
대장암의 대부분은 양성 종양(선종성 용종, 선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성으로 변해 생기므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통한 용종절제술은 암으로 악화될 소지를 없앤다. 정기 검진으로 대장의 양성 종양을 미리 발견해 제거함으로써 대장암 발생을 줄일 수 있다. 또 직장수지검사와 직장경 검사, 대변 잠혈 반응 검사 등도 대장암의 조기 검진과 예방에 유용한 검사법이다.
40세가 넘으면 누구나 대장암에 걸릴 위험에 노출된다. 이전에 대장 선종성 용종ㆍ염증성 장질환이나 유방암ㆍ난소암ㆍ자궁내막암 등을 앓았거나, 가족 중 대장암이나 대장 선종, 대장용종증 환자가 있거나, 지방 섭취가 많고 섬유질 섭취가 적으면 대장암 고위험군이다.
대한대장항문학회는 50세가 넘으면 3~5년 주기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를 권하고 있다. 최근 대장암 환자의 9%가 40대 이하 젊은 층에서 발생하는 만큼 가족력이 있거나 흡연자 등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40~45세에 한 번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대장암은 사망률이 높지만 검진으로 조기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80%에 가깝다. 아직 암이 대장에만 국한돼 있으면 5년 생존율은 96%로 높지만 다른 장기로 퍼지면 5년 생존율이 19.3%로 크게 줄어든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