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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두향 향한 퇴계의 그리움…‘구담봉 석벽’겹겹이 서렸을까

지역뉴스 | 기획·특집 | 2020-10-02 09:09:32

단양 단성면 적성산성과 구담봉,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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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두향 향한 퇴계의 그리움…‘구담봉 석벽’겹겹이 서렸을까
구담봉(물길 왼편)은 높지 않지만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봉우리가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주변 산줄기와 협곡을 이뤄 충주호에서도 절경으로 꼽힌다.

 

관광자원으로 치면 단양은 복 받은 곳이다. 물길과 산길 따라 수려한 경관이 펼쳐진다. 단양팔경으로는 모자라 제2단양팔경까지 선정해 자랑하고 있다. 경치만 빼어난 게 아니라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험한 산세에 비해 접근성도 좋아 예부터 이름난 문인과 화가가 절경을 찾아 흔적을 남겼다. 유서 깊은 도담삼봉을 비롯해 최신식 전망대인 만천하스카이워크, 주변의 수양개터널과 단양강잔도는 이미 널리 알려졌으니, 조금은 덜 붐비는 단양의 또 다른 절경을 찾아간다.

 

 

■국보 품은 휴게소, 적성산성 오르면 남한강이 한눈에

휴게소는 스쳐가는 곳이다. 잠시 쉬면서 급하게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는 곳이다. ‘소떡소떡’을 비롯해 개그맨 ‘이영자 메뉴’로 차별성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일시적 현상이다. 뭐 하나 잘 팔리면 유행처럼 번지니 늘 붐비지만 특색 없는 곳이 고속도로 휴게소다.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춘천방향)은 좀 다르다. 아니 특별하다. 휴게소 뒤편으로 돌아가면 국보가 있고, 남한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산성도 있다. 그럼에도 이 휴게소는 유난히 한산하다. 

휴게소 건물 오른편으로 돌면 남한강 전망대가 나오고, 뒤로 돌면 적성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잠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중턱쯤에 단양신라적성비가 있다. 삼국시대에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적성 지역을 점령 후 세운 비석으로 국보 제198호로 지정돼 있다. 높이 93㎝, 최대 너비 107㎝의 크지 않은 이 비석은 진흥왕 6~11(545~550)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78년 1월 6일 단국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됐는데, 그 과정이 극적이다. 이미 여러 차례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주민들은 별 게 없을 거라고 했다. 정영호 교수팀도 큰 기대를 갖지 않았고, 성벽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땅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돌 하나를 보게 된다. 한 쪽 끝이 삐죽하게 깨져 있어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등산객이 신발에 묻은 진흙을 비벼 털곤 하던 돌이라고 한다. 30㎝ 정도 묻혀 있던 돌을 파보니 글자가 줄줄이 새겨져 있는데 ‘적성’이라는 글자가 먼저 눈에 띄고 이어서 ‘이사부’ 등 신라인의 이름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비의 윗부분이 파손되고 두 동강이 나 있었지만 비문은 땅 속에서 온전하게 보존돼 남아 있는 284자(이후 발굴된 21자를 더해 현재까지 판명된 비문은 총 305자)는 판독이 가능한 상태였다. 비석이 있던 자리에서 옛 건물터도 발견됐다. 

비문의 대체적인 내용은 진흥왕이 신라의 척경사업(拓境事業)을 돕고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 적성인 야이차(也爾次)의 공훈을 표창한다는 것과, 장차 그와 같이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포고라고 한다. 새로 개척한 지방의 민심을 살피고 노고를 위로하며, 용맹하게 싸워 나라에 공훈을 세운 사람에게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한 다른 지역의 진흥왕순수관경비(眞興王巡狩管境碑)와 비슷하다. 국왕이 직접 행차하지는 않았지만 신라가 죽령을 넘어 최초로 축성한 군사기지에 세운 척경비로, 순수비의 선구적 형태라는 점에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적성산성은 성재산(323m) 정상 부근을 타원형으로 띠를 두르듯 축조한 테뫼식 산성이다. 성의 동쪽으로는 죽령천, 서쪽으로는 단양천이 흘러 남한강에 합류된다. 적을 방어하기에 용이하고 물길을 이용하기도 수월한 곳이다. 남한강 수로를 따라 상류로 가면 영월이고 하류로 이동하면 충주다. 강 건너 제천 방면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다. 경상도에서 죽령을 넘은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팽창시키는 전진기지로 이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생 두향 향한 퇴계의 그리움…‘구담봉 석벽’겹겹이 서렸을까
단양 적성산성은 남한강 물길과 접한 성재산 꼭대기에 축성된 신라의 산성이다.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왼쪽)에서 올라갈 수 있다.

 

■퇴계가 반한 건 두향일까 구담봉일까

단성면 소재지에서 남한강 물길 따라 약 10km를 내려가면 충주호의 절경이자 단양팔경의 하나인 구담봉이 우뚝 솟아 있다. 높이는 330m로 아담한 편이지만, 기암괴석이 층층이 쌓인 바위 봉우리가 웅장하고 수려하다. 맞은편 말목산과 협곡을 이룬 형상이어서 유람선이 지나는 물길과 함께 자못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구담(龜潭)은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 ‘구담은 청풍(지금의 제천시 청풍ㆍ수산면 일대)에 있는데 양쪽 언덕에 석벽이 하늘 높이 솟아 해를 가리었고 그 사이로 강물이 쏟아져 내린다. 석벽이 겹겹이 서로 막혀 문 같이 되었는데, 좌우로 강선대ㆍ채운봉ㆍ옥순봉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이황, 이이, 김만중 등 수많은 학자와 묵객이 찾아 그 절경을 찬미했다. 특히 퇴계 이황은 ‘중국의 소상팔경(후난성 동정호 남쪽에 있는 소상의 아름다운 경치)이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장회나루 입구에 뒤춤에 매화 가지를 숨긴 퇴계가 기생 두향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상에 세워져 있다. 두향은 퇴계가 9개월간 단양군수로 재임하며 사모했던 관기다. 짧은 부임 기간을 마치고 단양을 떠난 퇴계는 두향을 잊지 못했던 모양이다.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면서, 비어 있는 방 안에 초연이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말라.’ 매화를 사랑한 퇴계는 100편이 넘는 ‘매화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이 시는 단양에 두고 온 두향을 생각하며 지은 시로 추정된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8 남한강편’). 정해진 지역에서 맘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관기 두향의 무덤은 장회나루 맞은편 강선대 아래에 있다.

구담봉에서 한 굽이 돌면 옥순봉으로 이어진다. 현재 제천 수산면 땅이다. 단양군수 퇴계는 청풍군수 이지번에게 옥순봉도 단양 땅으로 넘겨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한다. 이지번은 토정 이지함의 형이다. 제아무리 큰 학자의 요청이어도 지역의 보물을 순순히 내어줄 리 만무하다. 아쉬운 마음에 퇴계는 옥순봉 아래에 단양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아쉽게도 충주호 물속에 잠겨 현재는 볼 수 없다. 장회나루에서는 단양나루, 청풍나루, 충주나루까지 다양한 코스의 유람선이 운행한다. 운행 시간은 사정에 따라 유동적이어서 전화(043-421-8615)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선암계곡 중선암 부근 풍광. 커다란 바위에 ‘사군강산 삼선수석’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단양 영춘 제천 청풍 네 고을에서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풍광이 가장 빼어나다는 의미다.

구담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남조천의 사인암, 단양천 선암계곡의 상ㆍ중ㆍ하선암 역시 단양의 유서 깊은 경관이다. 선암계곡은 월악산 국립공원 안 도락산에서 단성면 소재지까지 이어지는 약 10㎞ 계곡이다. 신선이 노닐다 간 바위라는 의미인데, 퇴계 역시 ‘삼선구곡(三仙九曲)’ 이라 이름 붙인 절경이다.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고, 맑은 물과 눈부시게 하얀 너럭바위가 어우러진 곳에서 잠시 발을 담그고 쉬어가도 좋다.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상선암 주차장은 유료(소형 4,000원)지만 하선암 주차장은 무료다. 중선암은 사유지인 도락산장 안에 있다. 산장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음료수라도 마셔야 차를 댈 수 있다.

사인암은 월악산의 또 다른 물길인 남조천 하류에 있다. 중선암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다. 사인암은 고려 말의 학자 우탁(1263~1342)이 ‘사인’ 벼슬로 재직할 당시 이곳에 머물렀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수직으로 우뚝하게 솟은 바위 절벽 아래로 맑은 여울이 흐른다. 선명한 격자무늬 암벽 위에 날개처럼 얹힌 노송이 또 한 폭의 그림이다. 단원 김홍도가 사인암을 그리려 붓을 잡았다가 1년여를 고민했다고 하니,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매력을 지닌 자연의 작품이다.

<단양=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기생 두향 향한 퇴계의 그리움…‘구담봉 석벽’겹겹이 서렸을까
구담봉의 웅장한 바위 봉우리. 볼수록 기기묘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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