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35)씨는 올해 벌써 세 번째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5년 전‘군발(群發ㆍcluster)두통’이라는 생소한 두통을 진단받은 후 매년 이맘때만 되면 되풀이하는 일이다. 한 달간 비슷한 시간마다 눈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이 통증이 생긴 김씨는 응급실을 찾아 산소를 흡입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진통제는 거의 듣지 않으며, 폐질환 등에 쓰이는 가정용 산소발생기는 군발두통 치료로 처방되지 않는다. 김씨는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고통에 매번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겪어야 하는 현실이 암담할 뿐이다.
군발두통은 매우 고통스러운 두통과 함께 눈물, 눈 충혈, 코막힘, 땀과 같은 자율신경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군발두통은 환자들이 ‘눈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 ‘차라리 머리를 벽에 찧는 것이 나을 듯한 고통’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로 통증이 매우 극심하다.
하지만 군발두통은 흔치 않은 탓에 질환을 진단받는 데까지 몇 년이 걸린다.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이 존재하고 최근 출시된 예방 치료제(릴리의 ‘엠갈리티’)가 희귀의약품으로 승인을 받았음에도 이렇다 할 만한 지원이 없다.
◇두통 발생 후 1~2시간 후 사라져
군발두통은 우리가 흔히 겪는 ‘긴장형 두통’이나 ‘편두통’과 증상이 다르다. 두통 발생 후 10분 내로 통증이 극에 달하다가 1~2시간이면 두통이 사라진다. 두통은 주로 한쪽 관자놀이와 안구 주변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또 환절기 같은 특정 기간에 나타나다가 매년 혹은 수년 간격으로 반복되는 특징을 보인다. 주로 남성 환자가 많은 편이다. 사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20대에 시작돼 길게는 60대까지 지속된다.
두통 중 가장 통증이 심하고 뚜렷한 특징을 보이지만, 군발두통은 눈물, 코막힘과 같은 동반 증상과 관자놀이 주변의 통증으로 인해 다른 질환으로 오해해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두통학회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군발두통 환자들은 최초 증상 경험 후 질환을 진단받기까지 평균 5.5년이 걸렸다. 군발두통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아직 진단을 받지 않은 환자까지 포함한다면 이 기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경 대한두통학회 부회장(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은 “군발두통은 연평균 진료 환자가 1만명 정도에 그칠 정도로 희소한 질환이고,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검사법이 없어 환자와 문진을 통해서만 진단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안진영 대한두통학회 부회장(서울의료원 신경과장)은 “군발두통에 대한 의료진의 충분한 임상 경험이 없다면 진단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뿐더러 환자들도 본인의 두통이 군발두통인지 모르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있어 질환 인식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산소치료, 처방·지원 안 돼 환자 부담 커
군발두통 환자들은 심리도 매우 불안정하다. 출산보다 고통이 심하고, 수 주 동안 증상이 반복돼 대부분의 환자가 두통이 발생하면 거의 일상생활을 할 수 없으며, 두통이 언제 다시 생길지 몰라 불안해한다. 실제로 군발두통 환자 3명 중 1명은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환자의 85%는 질환 때문에 결근하거나 퇴사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다 보니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군발두통이 나타났을 때 통증을 빠르게 줄이는 치료로 산소치료, 수마트립탄 주사, 졸미트립탄 비강 흡입제가 주로 권장된다. 하지만 산소치료 외에는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
산소치료는 두통이 생겼을 때 100% 농도의 산소를 분당 6-12L로 15분 이상 흡입하는 방법으로 시행된다. 환자의 70%가 산소치료 후 15분 이내에 효과를 보일 정도로 약물 대비 통증 경감 효과가 빠르며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산소치료는 군발두통 치료 중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것으로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산소흡입 치료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현재 군발두통을 치료하는 신경과 전문의에게 산소치료 처방 권한이 없는 데다 군발두통으로 산소치료 시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두통이 나타날 때마다 응급실을 찾아 산소치료를 받거나 일부는 산소치료 장비를 개별적으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군발두통 환자들은 지난 6월 산소치료 처방을 요구하는 청원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조수진 대한두통학회 회장(동탄성심병원 신경과 교수)은 “군발두통 환자들은 수주간 두통이 반복될 때마다 비용을 지원받지 못한 채 산소치료를 받고 있어 질환으로 인한 신체ㆍ심리적 고통에 경제적 부담도 크다”고 했다. 조 회장은 “학회는 산소치료 효과와 필요성을 근거로 처방권과 급여화를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으로부터 아직 이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