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이모(60)씨는 몇 달 동안 아랫배가 뻐근하고 소변을 볼 때마다 무언가 빠져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부위의 특수성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게 부끄러워 치료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그러나 증상은 점점 심해져 빠져나온 것을 손으로 쑤셔 넣어야 겨우 소변을 볼 수 있게 됐다. 골반 통증까지 생기자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았다.
이처럼‘밑이 빠지는 병’으로 불리는‘골반장기탈출증’이 생겨도 치료를 미루다가 병이 커져 뒤늦게 수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다행히 최근 로봇 수술이 가능해져 병을 한 번에 고치고 회복도 앞당길 수 있게 됐다.
신정호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를 만났다. 신 교수 수술팀은 로봇을 이용해 골반장기탈출증을 치료하는 ‘단일공 골반장기탈출증 로봇 수술’ 100예를 세계 처음으로 달성했다. 신 교수는 “골반장기탈출증은 50대 이상에서 30% 정도 발생하고, 특히 9%가량은 수술해야 할 정도로 증세가 심하다”며 “최근 단일공 로봇 수술을 하면 수술 시간(3시간 정도)도 줄이고 절개 부위(3㎝ 정도)도 작아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골반장기탈출증은 어떤 병인가.
자궁ㆍ방광ㆍ직장 같은 장기가 정상 위치를 벗어나 질(膣)을 통해 밑으로 처지거나 질 밖으로 빠져나오는 병이다. 직장이 빠져나오면 ‘직장류’라고 하고, 자궁이 빠져 나오면 ‘자궁탈출증’, 방광이 빠져나오면 ‘방광류’라고 부른다. 단독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복합적으로 생기기도 한다.
주로 임신ㆍ출산의 영향을 받아 병이 생긴다. 출산할 때 여성의 몸은 많은 변화를 겪는데 이때 골반 구조도 바뀌어 골반 구조물을 지지하는 골반 인대나 근막, 근육 등이 손상된다. 난산을 했거나 거대아를 출산했거나 여러 번 출산했다면 골반 지지 구조가 약해지므로 골반장기탈출증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골반장기탈출증은 출산한 경험이 있는 50세 이상 여성 10명 중 3명에게 발병할 정도로 중년 이상에서 빈번하다. 특히 50세 이상 여성의 9% 정도가 평생 한 번은 수술해야 할 정도다. 유전과 관련이 있어 어머니가 골반장기탈출증을 앓으면 딸에게도 30% 이상 발병한다.
골반장기탈출증이 생기면 밑이 묵직하고 빠지는 듯하거나, 실제로 달걀 모양처럼 장기가 빠져 나온다. 또 질 쪽에 덩어리가 만져지고 걸을 때마다 불편하며 질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봐도 시원하지 않으며 변비가 생기는 등 배변ㆍ배뇨 장애가 나타나고 골반까지 아프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장기가 질 입구로 얼마쯤 빠졌느냐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 초기에는 골반 근육 강화 운동을 하면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2기 이상 진행됐다면 반복적으로 질 밖으로 장기가 빠져나오고 염증이 생기므로 수술을 해야 한다.
골반장기탈출증은 폐경 후 노화가 진행되면 증상이 심해져 나이가 들수록 수술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 70대에서 수술을 가장 많이 받는다. 80세 이상은 체력이 약해 수술 후 후유증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수술보다 ‘패서리’로 불리는 실리콘 링을 질 안에 넣어 고정하는 시술을 한다. 그러나 패서리는 소독하기가 불편해 만성염증을 유발할 때가 많아 건강에 별 이상이 없는 고령 여성이라면 수술하는 것이 낫다.
-최근에는 로봇 수술로 많이 치료하는데.
예전에는 개복 수술이나 질식 수술, 혹은 복강경을 활용한 수술을 많이 시행했다. 하지만 수술을 하는데 4~5시간이 걸려 체력이 약하고 만성질환을 앓는 고령 환자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로봇 수술기를 이용해 구멍을 하나만 내고 시행하는 최소침습적 수술이 가능해졌다.
수술 시간이 3시간 정도로 단축됐으며 3㎝ 정도만 절개해 흉터가 작아 수술 후 통증도 줄고 회복도 빨라졌다. 며칠만 입원해도 근력이 떨어지는 고령 환자가 대부분인데 이런 점에서 안정적이다.
특히 로봇 수술기를 이용하면 정교한 수술을 할 수 있어 조직 손상 및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데, 여러 부위를 봉합해야 하는 고난도 골반장기탈출증에 특히 많이 활용된다. 실제 로봇 수술기를 이용해 수술을 시행하면 기존 수술보다 회복이 빠르고 재발률도 현저히 낮아진다.
-골반장기탈출증을 예방하는 방법은.
힘든 출산이 병의 기본 원인이지만 복압을 높이는 만성변비나 기침, 복부비만, 반복적으로 무거운 짐을 드는 것 등이 악화 요인이다. 따라서 골반장기탈출증을 예방하려면 적정 체중 유지와 배변 활동 및 생활습관 개선에 신경을 써야 한다. 평소 소변을 끊는 느낌으로 요도괄약근 주위를 조이는 것을 반복하는 케겔 운동으로 골반 근육을 강화하는 것도 예방에 도움이 된다.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재발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수술을 받은 여성의 3분의 1 정도가 재발돼 두 차례 이상 수술을 받았다. 따라서 골반장기탈출증으로 수술을 받았더라도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