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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터 문화까지… 고속성장 이끈 ‘컴퓨터 달린 불도저’

지역뉴스 | 기획·특집 | 2020-08-03 10:10:09

백상,장기영,창업주,서울경제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한국은행 기틀 마련하고 국내 첫 ‘신용대출’ 성사시킨 금융인

13년 경제연구 결과물로 ‘서울경제’ 창간…언론혁신 일깨워

 

“나의 뼈는 금융인이요, 몸은 체육인이며, 피는 언론인이다. 그리고 정치인은 나의 얼굴이다.” 쉴 새 없이 솟아나는 아이디어를 가졌다 하여 ‘일백 백(百)’ 자에 ‘생각 상(想)’ 자를 호로 쓴 백상 장기영(1916~1977) 선생이 생전에 그린 자아상이다. 은행원으로 시작해 한국은행의 토대를 다진 금융인이요, 서울경제와 한국일보를 창간한 언론인이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낸 체육인이면서 경제부총리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니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는 별명처럼 치밀함과 추진력을 겸비한 백상은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고 미답의 영역을 개척해낸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자 시대의 선구자였다. 서울경제 창간 60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는 그의 발자취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미증유의 혼돈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 믿음직한 지표를 제시하기 충분하다.

지난 1916년 5월2일 지금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해당하는 경기도 고양군 한지동에서 태어난 장기영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1등을 도맡았다. 수재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선린상업학교에서도 최상위권에 올랐고 졸업하던 1934년에는 ‘우등 졸업자’로 일간신문에 이름과 사진이 함께 실렸다. 서울대 상대의 전신인 경성고등상업학교에 무시험 입학할 특전을 받았지만 어려워진 가정형편 탓에 진학의 뜻을 접은 그는 지금으로 치면 거대 다국적 기업인 조선은행에 입사해 청어잡이로 번성했던 청진점에서 스무 살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발군의 인재였다. 1943년 은행 내 공모에 제출한 ‘저축과 물가, 그리고 인플레’라는 제목의 논문은 당대의 경제학·사회학 이론에 케인스 이론을 접목해 큰 주목을 받았다. 백상은 이 논문으로 당대 엘리트들이 집결한 조선은행에서 1등 상을 거머쥐었다.

이론에만 밝은 게 아니었다. 백상은 조선은행 최초의 ‘신용대출’을 밀어붙인 주인공이다. 태풍으로 배를 날린 선주가 필사적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는 것을 본 백상은 ‘폭풍우를 뚫고 배를 구하려 한밤중에 뛰어다니는 정신’을 높이 사 담보 없이 선뜻 대출을 권했다고 한다. 유례없는 신용대출을 받아 재기에 성공한 선주는 이후 남한에서 손꼽히는 재벌그룹을 이뤄냈다. 백상의 인재 중시와 사람을 보는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혜안도 남달랐다. 일제강점기 말 패색이 짙어진 조선총독부의 화폐 남발로 인해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한 1946년, 백상은 서울신문 기고문을 통해 ‘일본이 통화를 남발한 부분을 대일 청구권에 포함시키되 일단 미국에 대신 받아 새로운 조선은행권 발행과 경제건설에 활용하면 초물가고를 잡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훗날 경제부총리로 재임하며 펼친 외자도입 활성화 정책은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다.

다만 낭중지추라 공만큼 적도 많았다. 한국은행 설립 1년 후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해 은행원으로서의 1막을 끝낸 그는 언론인으로서 인생의 2막을 열어젖혔다.

언론인 장기영의 첫 행보는 재정난에 빠져 있던 조선일보로 향했다. 1952년 4월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해 2년간 부수 13배 신장의 기록을 이뤄냈다. 이후 타의에 의해 신문사를 나서며 그는 젊은 조국에 걸맞은 새로운 언론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태양일보를 인수해 1954년 6월9일 창간한 한국일보는 뉴스의 가치에 의해 독자에게 인정받고 광고주에게서 광고 게재를 의뢰받는 상업지를 표방했기에 남달랐다. 사장실에 야전침대를 설치하고 철야로 신문제작을 독려한 백상의 일화는 유명하다.

‘신문기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비롯해 ‘사건이 발생한 그 시간이 바로 마감시간이다’ ‘신문은 비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칭찬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등의 어록은 기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현장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발로 기사를 쓴다’는 표현도 그의 입에서 나왔다.

1960년 8월1일 창간한 서울경제는 13년 숙고의 결과물이었다. 1947년 초 장기영을 포함한 은행의 30대 젊은 실무책임자 8명이 결성한 ‘서울경제연구회’가 시발점이었다. 쟁쟁한 인력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새로 태어난 조국의 경제에 대해 토론했다. 경제신문이 필요하다는 데 뜻이 모였지만 여의치 않아 발간한 ‘경제평론’은 재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일보가 연착륙하자 재벌그룹 회장이 투자를 자처하며 경제신문 창간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백상은 정중히 고사했다. 신중히 때를 기다렸고, 오랜 동지들인 서울경제연구회의 제안으로 제호 ‘서울경제’ 창간을 결정했다.

백상의 통찰력은 서울경제 지면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백상은 창간 일주일 뒤부터 서울경제에 ‘경제인 왕래’라는 고정란을 운영하도록 했다. 김포공항에 전담기자를 배치해 공항을 오가는 주요 인사들의 출국 일정, 해외 업무 계획을 간략하게 실었는데 해외 출장이 극히 드물던 시대에 누군가 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면 그 자체로 중요한 경영정보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는 길목과 핵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62년 11월28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로 군부(혁명정부)의 심기를 건드려 사장 겸 편집국장인 장기영을 비롯한 4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자진 정간의 압박을 ‘3일 휴간’으로 버텨내면서 백상은 “한국일보를 3일 정간하는 대신 서울경제를 배달하라”고 감방에서 지시했다. 독자와의 약속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책임자들은 자숙의 모양새를 취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9일 만에 출소한 백상은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 같은 우여곡절에도 박 대통령은 경제이슈가 터질 때마다 “서울경제를 가져오라”고 했으니, 날카로운 분석과 정확한 예측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1964년 5월11일 백상은 박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에 따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입각했다. 좀체 측근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 박 대통령이 경제 분야만큼은 전권을 일임했다. 경제난국 속에 등장한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취임식에서 ‘물가를 때려잡고 저축을 늘릴 테니 6개월만 참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 약속대로 한국 경제는 백상이 경제부총리로 재임하던 기간 중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고속성장 가도에 들어섰다. 경제기획원은 백상이 서울경제신문·한국일보 발행인으로 복귀한 1967년 10월까지 최강 경제부처로서 한국 경제의 고속질주를 이끌었다.

문화·스포츠는 백상의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추상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이자 해방 후 프랑스 현지에서 이름을 떨친 첫 번째 한국화가인 거장 남관(1911~1990)을 국내에서 먼저 알아본 이가 바로 백상이었다.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처음 개최한 이도 백상이다. 우리의 씨름이 일본의 스모에 뒤질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프로야구의 초석도 다졌다. 1971년 첫 경기를 시작한 봉황대기 고교야구는 지방의 무명선수들을 서울운동장 마운드에서 주목받게 했고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의 모국 방문경기로도 이어졌다.

소설가 황석영에게는 ‘뚝심 있는 후원자’였다. 황 작가는 1974년 연재를 시작한 대하소설 ‘장길산’을 준비한다며 ‘자료 조사비’ 명목으로 백상에게서 ‘집 반 채값 정도’의 거금을 받아갔는데 보름 만에 술값으로 돈을 날렸다. 다시 찾아간 그에게 백상은 돈과 함께 단골 술집의 명함을 주며 “달아놓고 마시라”고 타일렀다. 꼬박 10년이 걸린 ‘장길산’의 완결을 보지 못한 채 백상은 타계했지만 연재소설은 유훈처럼 지속됐다. 시대를 앞서 간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는데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해인 1975년에는 공채로 여기자만 뽑았다.

백상과 함께 한국 경제는 승승장구했으나 유신 정부의 언론통제는 심각해졌다. 권력에 의해 쫓겨나는 기자들이 생겨났으나 서울경제와 한국일보만은 해직 기자가 없었다. 백상이 이들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정작 백상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못했다. 남들의 네다섯 배나 열정적인 인생을 산 백상은 우리 나이 겨우 62세로 타계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의 경제·언론·정치·문화·스포츠는 또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을지 모를 일이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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