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주택 리모델링이나 자녀 학자금 마련 용도로 인기를 끌었던 ‘주택 담보 신용 대출’(HELOC, 이하 ‘담보 대출’) 발급이 급감하고 있다. 주택 가치가 크게 올라 마음만 먹으면 담보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금융 위기의 ‘아픈 기억’에 주택 소유주들이 조심스러워졌다. 이에 따라 대형 은행의 주요 대출 수익원도 크게 줄고 있다고 경제 전문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 금융 위기 ‘학습 효과’
주택 자산을 담보로 현금을 대출받는 담보 대출 시장은 주택 시장 붕괴 직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뉴욕 연방 준비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2003년과 2006년, 불과 3년 사이 대출 발급 규모가 무려 2배나 급증한 바 있다. 당시 주택 가격 급등과 함께 은행들이 담보 대출을 마구잡이식으로 발급하며 주택 소유주들은 주택 자산을 마치 ‘현금 인출기’(ATM)처럼 사용하며 소비 지출 급등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부동산 시장 조사 기관 블랙나이트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미국 주택 소유주들이 보유한 주택 자산 가치는 약 6조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9년 약 2조 6,000억 달러와 비교하면 약 3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주택 소유주들은 마음만 먹으면 담보 대출을 통해 얼마든지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주택 시장 회복과 함께 주택 자산 가치가 크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 담보 대출 규모가 예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뉴욕 연방 준비은행에 따르면 담보 대출 규모는 10년 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2009년 은행 전체 대출 자산 중 약 5%를 차지했던 담보 대출 비중은 최근 약 2% 미만으로 떨어졌다.(연방 예금 보험 공사 자료). 주택 가격 급등과 모기지 대출 둔화로 주택 자산 가치가 사상 기록적인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담보 대출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2008년 발생한 서브 프라임 사태 때의 ‘학습 효과’가 원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원 플러스 원’ 대출 당분간 보기 힘들 것
연방 준비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의 경우 연평균 약 10%에 해당하는 주택 소유주들이 담보 대출을 받았으나 2016년에는 그 비율이 약 4%로 떨어졌다. 대출 기관 ‘피겨’(Figure)의 오토 폴 대변인은 “2008년 이후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라며 “시장 활황기 때처럼 은행들이 주택 구입 대출과 함께 ‘원 플러스 원’처럼 담보 대출을 발급해주던 시기는 지나갔다”라고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대형 은행의 대출 수익 구조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자산 규모 2위인 ‘뱅크오브아메리카 콥’이 지난 3분기 발급한 담보 대출 규모는 약 5억 5,200만 달러로 10년 전보다 약 3분의 2가 감소했다. 대출 은행 업계는 모기지 이자율 격차, 온라인 렌더에 의한 개인 대출 보편화, 주택 시장 침체에 따른 학습 효과 등을 담보 대출 규모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 이자율 낮은 ‘캐시 아웃’ 재융자 더 선호
담보 대출 이자율은 크레딧 카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적용된다. 담보 대출에 적용되는 이자율은 ‘우대 금리’(Prime Rate)에 대출자의 신용도에 따라 은행 측이 부과하는 마진 이자율을 더한 이자율로 결정된다. 금융 정보 업체 ‘인포마 파이낸셜 인텔리젼스’(Informa Financail Inteligence)에 따르면 약 5%인 최근 우대 금리를 감안한 평균 담보 대출 이자율(9월 말 기준)은 약 6.45%다.
담보 대출에 적용되는 이자율은 재융자를 실시하면서 주택 자산 가치를 담보로 현금 대출을 받는 이른바 ‘캐시 아웃’(Cash Out) 재융자 이자율(3.99%)과 약 2% 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모기지 대출 이자율과 담보 대출 이자율 간 격차가 1% 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면 주택 소유주들은 담보 대출보다는 ‘캐시 아웃’ 재융자를 신청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캐시 아웃’ 재융자에 적용되는 이자율은 담보 대출 이자율고 달리 고정 이자율로 장기적으로 이자율 변동에 따른 위험 부담이 낮기 때문이다.
◇ 무담보 개인 대출 상품보다 낮은 만족도
온라인 렌더에 의한 무담보 개인 대출이 성행하고 있는 것도 담보 대출에 대한 인기가 식고 있는 이유다. 일부 온라인 렌더는 불과 하루 만에 대출을 발급할 정도 매우 간소화된 대출 심사 과정을 앞세워 개인 대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담보 대출을 발급받으려면 복잡한 서류 제출과 주택 감정 평가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기간도 아무리 빨라야 45일이 필요하다.
담보 대출의 가장 큰 부담은 무담보 개인 대출과 달리 연체가 발생하면 주택을 압류로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소비자 만족도 조사 전문 기관 J.D. 파워의 최근 조사에서 온라인 렌더의 만족도가 담보 대출 은행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기관 소셜 파이낸스의 로렌 애나스타시오 재정 전문가는 “높은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간소한 절차로 인해 개인 대출을 신청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 당분간 불황 피하기 힘들 것
은행들도 이 같은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시티즌 파이낸셜 그룹은 최근 담보 대출 기간을 절반 수준인 35일로 단축하기로 결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역시 온라인을 통한 담보 대출 신청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담보 대출 규모가 예전 수준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택 시장 침체를 경험한 주택 소유주들이 대출 규모를 늘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이미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뉴욕 연방 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가구 대출 규모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주택 담보 대출 부문에서의 감소세가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이자율 현황과 개인 대출 증가로 인해 담보 대출 시장이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며 “모기지 이자율이 다시 오르면 담보 대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