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2분짜리 링컨 게티스버그 추도연설
민주주의와 정부 역할서 자주 인용
처칠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서 용기 불어넣어
‘록스타처럼 전율 흐르는 연설’ 오바마
국가 분열 통합하고 혁신 이끌어 내
정치의 무기는 언어다. 설득하고 논쟁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일련의 정치행위에서 언어는 핵심 전력이자 빛나는 유산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 세계 각국에 이르기까지 연설 능력이 정치인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이유다. “그리스의 군사는 무섭지 않다. 그러나 데모스테네스의 세 치 혀끝은 두렵다.” 그리스 최고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BC 384-322)를 두고 마케도니아의 적장 필립 왕이 했다는 이 말은 정치에서 연설의 치명적 중요성을 입증한다.
■짧지만 강렬한, 진심의 힘
역사에 남은 명연설은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에서 주로 나왔다. 언어는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곧 세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미국 제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이 꼽힌다. 남북전쟁 최후의 결전장이었던 게티스버그의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링컨은 전몰병사들을 위해 그 유명한 “87년 전 우리 조상은 자유에 기반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명제를 받드는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로 시작하는 추도연설을 시작했다.
“세계는 여기서 쓰러진 용사들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싸운 사람들이 지금까지 훌륭하게 추진해온 그 미완성의 사업에 몸을 바쳐야 할 사람들은 우리들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 그 대사업이란 명예로운 전사자들이 최후까지 온 힘을 다하여 싸운 대의에 우리가 더욱 더 헌신해야 한다는 것, 이들 전사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맹세하는 것, 이 나라를 하느님의 뜻으로 자유의 나라로 탄생시키는 것,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몇 마디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준비했던 고작 2분짜리 이 연설은 당대 최고의 웅변가였던 주연설자 에드워드 에버렛의 2시간짜리 연설을 역사에서 삭제하며, 지금까지도 민주주의와 정부 역할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현란한 수사법의 대가들
수사학의 대가였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대 독일 항전 연설(1940)은 힘과 용기가 넘치는 명연설로 유명하다. 반복과 대조, 은유와 역설, 접속사 생략 등을 통해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운 그의 연설은 파죽지세의 독일에 맞서 싸우느냐 항복하느냐를 놓고 양분돼 있던 민심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라는 사자후를 발했던 처칠은 세계대전이라는 대혼란의 시기에 수사의 힘으로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서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통해 절망과 비탄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와 신뢰를 불러일으켰다.
소아마비로 얻게 된 장애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네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위대한 연설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치인이다. 대공황으로 도탄에 빠진 국가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뉴딜 정책을 주창했던 그는 첫 번째 대통령 취임식(1933)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연설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1963)은 은유법과 반복법과 점층법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불후의 명연설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들의 후손과 노예 소유주들의 후손이 형제처럼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학대와 불공평의 열기가 이글거리는 미시시피주조차 언젠가 자유와 정의의 안식처로 바뀌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명의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나라에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비폭력 항거를 촉구한 그의 분노에 찬 사자후는 오늘날까지 바이블처럼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다.
■열정과 진정성으로 청중을 뒤흔들다
많은 전문가들이 ‘현대의 키케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최고의 연설가는 미국의 가장 젊었던 두 전직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다. 열정의 화신들로서 국적을 막론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케네디는 문학적 언어와 세련된 몸짓을 통해 외치는 연설이 아니라 청중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연설로 새로운 시대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혁신적 외교정책으로 냉전체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했던 이 뉴 프런티어의 기수는 그 유명한 대통령 취임사(1960)를 통해 평화를 향한 변화에의 참여를 촉구했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기 전에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
이 모든 명연설의 역사를 하나로 체화한 21세기의 웅변가로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오롯하고 우뚝하다. 그의 비판자들은 오바마가 미국 출생이 맞느냐는 의문은 제기했지만, 그가 미국 전통에 충실한 레토릭을 사용한 최고의 연설가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역사회 조직가이자 헌법학 교수였던 이력과 미국에서만 가능한 가족의 역사를 가진 흑인으로서 오바마는 열정과 진정성이 흘러넘치는 고양된 웅변가였다. ‘록스타처럼 전율이 흐르는 연설가’라는 평가가 과언이 아니다. <박선영 기자>
명연설로 역사를 만들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 왼쪽부터 에이브러햄 링컨, 윈스턴 처칠, 마틴 루터 킹, 존 F. 케네디.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었다. 때로는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든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우리 시대의 명연설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올 1월10일 시카고 레이크사이드센터에서 대통령 고별연설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시카고=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