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은퇴지출 조사
크레딧카드 부채 68% 달해
높은 금리 은퇴자 옥죄
“최대한 빨리 상환해야”
미국 은퇴자들 가운데 크레딧카드 빚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크레딧카드 대출에 의존해 살아가는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미국 경제에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일 비영리기관인 직원혜택연구소(EBRI)가 지난달 발표한 ‘2024년 은퇴지출조사’에 따르면 은퇴자의 5분의 2 이상이 크레딧카드에 잔액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EBRI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자 10명 중 6명이 부채를 갖고 있고, 이 가운데 크레딧카드 부채가 68%, 모기지 부채 38%, 자동차 론이 34%에 달한다. 설문조사는 62세에서 75세 사이의 은퇴자를 대상으로 했다.
이번 조사에서 은퇴자의 31%는 “지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답했다. 2020년 조사에서 17%만이 같은 응답을 했던 것과 비교해 숫자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은퇴자들은 부동산 자산을 제외한 총 자산이 2만5,000달러에 불과하다고 응답했다.
부채를 갖고 있는 노령인들의 비율은 지난 수십년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발표된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소비자 금융 조사에서 75세 이상의 사람들 가운데 53%가 “부채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 1989년 21%에서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은퇴 직후인 65세부터 74세 사이의 사람들이 부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은 1989년 50%에서 2022년 65%로 증가했다. 미국 국가노인위원회의 경제복지센터 책임자인 제시카 존스턴은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노년층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이 크레딧카드 부채 증가의 주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USA투데이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크레딧카드 대출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한창 일하던 1980년대는 은행에서 크레딧카드를 속속 도입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AARP 공공정책연구소의 수석 전략정책 고문인 데이비드 존은 “현재 은퇴자들은 직장 생활 내내 생활비의 일부로 크레딧카드를 사용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며 “그들 입장에서 크레딧카드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65세 이상 은퇴자들이 생산가능인구 연령대(만 15세 이상 64세)와 같이 고정수입으로 생활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부채 관리를 위해 더 높은 급여를 주는 직장을 잡기도 힘들다. 각종 이자율과 대출금리는 은퇴자들의 삶을 점점 옥죄어 오고 있다. 연방 데이터에 따르면 크레딧카드 이자율은 2022년 2월 14.6%에서 올해 8월 21.8%로 상승했다. 올해 8월 현재 신규 자동차 60개월 론의 평균 금리는 8.4%로 3년 전보다 4.6%포인트 상승했다.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의 경우 6.7%로 2022년 1월 3.2%의 두 배 이상 높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대출잔액이 은퇴자들을 재정적 붕괴에 이르게 할 수 있다며, 지출을 줄여서라도 크레딧카드 등 대출을 빨리 갚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보스톤 칼리지 은퇴연구센터의 경제학자 시얀 류는 “부채가 많을 경우 파산을 선언해야 할 수도 있고, 채권자에게 쫓기며 집을 압류당할 수도 있다”며 “이 같은 스트레스는 은퇴 생활에서 피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크레딧카드 부채는 나쁜 부채”라며 “이자율이 매우 높고 복리로 정말 빨리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데이빗 존은 “부채를 줄이려면 결국 생활수준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홍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