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엘리트 학원
첫광고

[김용현의 산골 일기] 죽은 나무 살리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1-06 11:37:15

김용현의 산골일기,김용현,평화운동가,죽은 나무 살리기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산기슭에 자리한 아파트의 작은 거실이지만 동쪽으로 큰 유리창이 나 있고 그 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면 한 겨울인데도 따뜻한 봄날 같다. 문득 바깥추위가 걱정돼 텃밭에 갔더니 꽃은 졌어도 오랫동안 버티던 모란과 백합꽃 줄기가 꽁꽁 얼어버렸다. 진즉 가보지 못한 게 미안했다. 겨울은 자칫 내 한 몸의 문제에만 집착해 주변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살기 쉬운 계절이다.

 겨울에 텃밭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 그 때 땅은 크게 호흡을 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늦가을에 땅 속에 심어놓은 겨울 채소들은 오히려 몸을 단단히 여미며 생명을 이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봄에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기 위해서는 모진 겨울이 독이 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봄이 오면 죽은 나무를 다시 일으켜 꽃을 피우게 할 수 있을까. 대학 때 같이 연극을 하다 희곡으로 바꿔 동아 연극대상을 받은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의 수상작품이 ‘죽은 나무 꽃 피우기’ 였다. 내가 복직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고향에서 같이 살자 며 울면서 붙잡던 기억이 난다.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열정적이고 우정이 깊은 친구였다.

딸은 겨울에도 푸른 싹을 보고 싶다며 햇볕 가득한 방 하나를 온실로 만들어 겨울 텃밭을 이어 간다. 방안에서 아루그라, 실란트로 등의 야채와 각종 화초 그리고 레몬과 라임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겨울밤에 춥지 말라 고 밤새 전등불을 켜 놓고 지내는 마음이 보기에 사랑스럽다. 내가 속한 교회 작은 그룹의 이름이 ‘늘 푸른 사랑방’ 인데 딸네 집에 와도 ‘늘 푸른 사랑방’ 이 있다.

봄이 된들 완전히 죽은 나무를 살리는 건 사람의 영역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죽어 가는 나무를 지켜주며 꺼져가는 생명에 기운을 넣어 회복시켜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노벨 문학상 수상식장에서 한 강 작가도 말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사랑과 화해를 주장하는 편에 설 수 있게 한 일은 얼마나 큰 은총이며 축복인지 모른다.

이 추운 겨울밤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 일을 해내고 있다.

대통령의 폭력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사태는 그동안 한국 근대사에 무심했던 청년들 특별히 젊은 여성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을 일으켜준 놀라운 계기가 되었다. 설사 대통령과 그 추종세력들이 혼란 상태를 장기화 하려고 획책 하더라도 젊은이들이 품은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결코 꺾지 못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때 ‘재건’이란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국가 재건 최고회의, 재건 국민운동본부, 재건 체조, 재건 복 심지어 재건 담배도 있었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호였지만 ‘사라지거나 부셔져 버린 것을 다시 세운다’ 는 뜻의 ‘재건’은 좋은 의미다.

뉴욕 맨해튼 남쪽에 ‘하이 라인(High Line)’ 이라는 하늘공원이 있다. 화물열차가 다니던 버려진 철길을 자연을 사랑하는 두 젊은이가 사들여 시민을 위한 아름다운 공원으로 재건했다. 30피트의 높이와 1.5마일의 길이의 철로위에 꽃과 나무를 심고 조각물과 벤치를 설치해 살벌한 겨울에도 사람들이 북적댄다.

 생명을 살리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며 자연을 재건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된다.

<김용현 평화운동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수필] 집으로 가는 길
[수필] 집으로 가는 길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교육장에 들어서고 나서야 콧등 위에 안경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이 중요한 날에 안경을 차에다 두고 오다니. 몸은 이

[데스크의 창] 정의에도 ‘중립’이 있을까
[데스크의 창] 정의에도 ‘중립’이 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이 1980년부터 진행한 수업 내용을 토

[뉴스의 현장] 먹고 사는 문제, 관세로 뒤흔들리다
[뉴스의 현장] 먹고 사는 문제, 관세로 뒤흔들리다

성장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기자는 요즘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심난하다. 외식비가 치솟아 끼니의 대부분을 직접 해 먹고 있는 탓에, 장 보는 일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자,

[화요 칼럼] 행복의 조건
[화요 칼럼] 행복의 조건

『행복의 조건』 의 저자 조지 베일런트(George Eman Vaillant)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연구자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성인 발달 연구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파트 D 의 보조금 (Extra Help)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파트 D 의 보조금 (Extra Help)

최선호 보험전문인 세상은 공평한가? 아니면 불공평할까? 결론은 대개 불공평한 세상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다.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향에서는 공평성이 제대로 발휘되겠지만, 현실 사회에

[애틀랜타 칼럼] 바르게 보는 법을 배우자

이용희 목사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은 항상 마음의 판단이 있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보는 것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내 마음의 시] 아름다운 산책길
[내 마음의 시] 아름다운 산책길

써니 권(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새벽에공원산책하면아침 이슬 영롱한 아름다움모든 생물들 깊은 잠에서깨어나 기지개 활짝 펴네. 오늘은토끼풀이 나를 반기네혹시 네잎 클로버 찾을까그러나

[법률칼럼] 법의 그림자 속 숨겨진 이야기3화

케빈 김 법무사  창고의 진실과 법의 판결“진실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법은 그것을 밝혀내는 열쇠다.”로펌에서 일하며 깨달은 진리다.제니와 나는 동건의 유산을 둘러싼 싸움에서

[벌레박사 칼럼] 독거미 퇴치하는 법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면 스파이더맨이 발사하는 거미줄은 악당을 무찌르거나 스파이더맨을 자유롭게 이동시켜주는 매력적인 것으로 보여진다.그러나 현실에서의 스파이더, 거미는 그렇지 않다.

[행복한 아침] 철들 무렵

김정자(시인·수필가)     우연히 오랜 친분이 있는 분들을 음식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에 두 손을 잡고 어린 아이처럼 깡충대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문득 ‘나 이제 철 들었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