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명령 서명
주정부들 ‘위헌적’ 반발
“수백만명 투표권 박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시민권자임을 입증한 사람만 연방 선거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내용의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했다. 유권자 등록시 시민권 증명 문서를 첨부하라는 것이 골자다. 미국인들 중에는 여권 등이 없어 시민권을 증명하기 힘든 미국인들이 수백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의 투표권이 사실상 박탈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연방 선거제도 수정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해당 행정명령은 시민들이 유권자 등록시에 정부가 발급한 미 시민권 증명 문서를 제시하도록 규정했다. 우편투표를 실시할 때는 ‘선거일 이후 도착한 투표지를 무효표로 처리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행정명령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선거설’이 그대로 담겼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부정선거로 인해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주장을 펼쳐왔는데, 이 부정선거설의 두 주축이 ‘선거 사기’(부정 유권자 등록)와 우편투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부정선거의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반면 행정명령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AP통신은 비영리연구소인 브레넌 정의센터의 2023년 보고서를 인용해 유권자 연령에 달한 미국 시민 가운데 9%에 달하는 2,130만 명이 시민권 증명 서류를 쉽게 구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릭 하센 UCLA 로스쿨 교수는 이날 블로그에서 “소수의 무자격자 투표를 막겠다고 수백만 명의 유자격 유권자 투표를 막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시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정명령을 내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적 다툼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콜로라도 주정부 등은 이번 행정명령을 ‘불법적’이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독립기관인 EAC에 연방의회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릴 권한이 있는지도 논란 거리여서 위헌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