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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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어머니

신은 세상에 오실 때 ‘어머니’란 이름으로 오셨다고 한다. 한 생을 어머니로 살아 온 내가 지금도 나 자신 가장 힘들고 고독한 이름이 ‘어머니’이다. 어느 날 ‘어머니’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길없는 길 위에 실타래처럼 얽기고 설킨 길 위에 하얗게 타버린  형체도 없는 어머니가  외롭게 홀로 서있었다. 그림을 그리다 울어서 눈물 자국이 화선지를 적시고 끝내 어머니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 자녀 아닌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아이가 태어날 때 처음 불러 본 이름 어머니가 아이의 첫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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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빛나는 나다

몇년 전 CBS 하라미 국장이 우리 딸이 시집 가는데 ‘축시’ 부탁합니다라 했다. 따님 이름이 뭐죠? 했더니 ‘빛나’에요 했다. 결혼식 축시란  그리 쉽지 않고 개인이 오랜 지인이 아닌 때는 무슨 말을 써야 하는지 망설일 때가 많다. 그런데 딸 이름이 ‘빛나’라는 말에  나는 그자리에서 ‘빛나는 시집가네’로 축시를 쓰기로했다.‘당신이 빛나는 순간’은 전 세계 베스트 셀러로  뜨면서 우울한 2020년의 코로나의 아픔을 이겨 나가기는 지침서로 뜨고 있다.빛나의 결혼식 때 축시 낭송 시간에 ‘빛나는 시집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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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모릅니다.괜찮다. 참 나다.

내 속뜻을 들여다 보는 듯 시원하고 통쾌한 시다. 얼마나 오랜 세월 안다고 서성대고 살아 온  부끄러운 지난 날들이었나---지금보다 더 젊은 날 이 세 마디 시를 알았더라면 그 안다고 서성이던 부끄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을---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쏟아지는 글꾼들의 글을 보면서 글 쓴다는 일이 얼마나 부끄럼인지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나 쏟아지는 책들, 정보 시대가 사람을 과연 참된 인간을 만들어 왔는가 의문으로 남는다.인간은 그리 쉽게  참 지혜를 얻기도, 참 인간이 되기도 쉽지 않다. 그 옛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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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이충무공 순신의 탄생일을 맞이하며(1545.4.28~1598.12.16)

2021년 4월28일 민족의 성웅 이충무공순신의 탄생 475주년이 되는 날이다.(이하 공이라 함)공께서는 한성(서울)에서 탄생, 경상도 남해 노량에서 향년 53세로 순국하셨다. 유택은 충청도 아산, 본관은 덕수, 아호는 기계, 덕암, 자(字)는 여해, 시(諡)는 충무(忠武)다.1576년 31세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정2품 정헌대부 삼도수군 통제사에 이르렀다.공의 일생은 주지하는 바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만 공께서는 위국헌신 일념으로 시기, 모함, 투옥, 백의 종군, 임금의 무언의 견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어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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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만만치 않은 이민자의 땅 어떻게 살아야 성공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요, 절벽 산책 같은 낯선 이 땅, 만만치 않은 질문이요, 가슴 시린 현실이다.1980년 나는 다운타운 흑인가 애틀랜타에서 가장 험악한 범죄 지역에서 8년간 식당을 운영했다. 이름도 듣지 못한 소울푸드라는 남부 특유의 음식점을 팔레스타인인이 팔고 간 식당을 인수했다. 하루 매상은 100불 정도.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다. 흑인 쿡 한사람이 부엌에서 쿡을 했고 난 손님들에게 음식을 팔았다. 하루 아침에 내 인생 자체가 흔들리는 암흑에서 가끔은 손등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이게 꿈이 아닌가?  눈을 떠 보면 홈리

|김경자,독자기고 |

[독자기고] 짐 크로를 동경하는 조지아 주지사

지난 주 공화당이 주도하는 조지아 주 의회는 소수민족의 투표권을 대폭 위축시킬 수 있는 투표법을 전격 통과시켰다. 그 내용은 조기투표 기간을 단축하고, 또 매일 투표하는 시간을 줄이며, 부재자 투표 자격을 축소하고 또 공직자가 조기투표 신청서를 주민들에게 보내는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와 2021년 1월 두 명의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을 뽑는 선거 개표를 할 때 초반에 압도적으로 우세하던 공화당 후보들이 막판에  민주당 성향의 부재자 투표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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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광활한 우주와 인간

 오랜 전 이야기인데 내가 초등학교 때로 기억하고 있다. 긴긴 여름 날에 저녁을 먹고 얼마 안 있으면 어느새 서쪽에 땅거미는 사라지고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온다. 그 당시 시골의 초가집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방에 들어가봐야 방 옆으로 뚫린 자그마한 창틀 하나밖에 없었기에 대여섯 식구가 한 방에 누우면 방 안이 꽉 차니까 덥고 견디기가 힘들어서 나는 형 그리고 누나와 함께 돗자리를 들고 밖의 마당으로 나가서 그걸 깔고 각자들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부채질을 하면서 영롱하게 빛나는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감상하며 북두칠성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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