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나에게 그 일이 나타나지 않아도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해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하는 믿음의 완성은 감사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나타난 마리아의 찬양은 단순히 멜로디에 맞춰서 부르는 <목소리만의 찬양>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 않은 상태에서 마리아가 믿음으로 미리 고백한 <찬양의 대 서사시>입니다. <카르페 디엠>의 싯구처럼, 현재에 대한 예리한 마리아의 영적 통찰력은 현재를 포착한 <믿음과 감사와 기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눅 1:46~55은 마리아의 현재에 관하여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믿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상황에 따른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마리아의 감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영적 통찰력은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을 외치는 듯한 그녀의 우렁찬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그는 예리한 분석과 통찰력으로 “현재를 잡으라(Carpe diem)”고 현재에 관한 예언자적인 선포를 하였습니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는 온 인류는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의 선포자적인 메시지를 마리아의 찬양을 통하여 들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은 감사하는 그의 찬양에서 나타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눅1:46). 누가 주를 찬양할 수 있을까? 무슨 근거로 미래의 불확실한 삶을 앞두고 현재에 과감하게 주를 찬양할 수 있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권 속에 살고 있는 21세기의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캐롤송이나 크리스마스 장식에 불조차도 밝힐 수 없는 암흑의 현재, 백신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 속에 싸여있는 현재, 바로 이러한 오늘의 현재 상황에서 마리아처럼 과감하게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관심을 버리고 현재의 상황으로 카르페 디엠의 통찰력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마리아의 영안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눅1:47). 마리아는 내일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현재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녀만의 확실한 평강에 기초한 기도가 있습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눅1:48). 참 믿음, 참 감사, 참 기도는 현재에 확실한 평강이 존재합니다. 카르페 디엠의 시각으로 현재를 바라보기 전에는 마리아는 불안하고 근심과 염려 가운데 우울함까지 동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현재의 그 불안한 마음을 붙잡아주신다고 확신하는 순간 더이상 불안한 마음은 그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어제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현재> <동일한 카르페 디엠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관심의 대상으로 바뀐 것입니다(히13:8).
마리아의 카르페 디엠의 본질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포스트 모더니즘의 현대인들의 카르페 디엠의 본질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야훼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All Your Wonderful Deeds)”을 전하리이다”(시편9편1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Wonderful Counselor)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이사야9장6절).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 마리아의 카르페 디엠! 예수 그리스도의 카르페 디엠! 오늘 현재를 놓치지 마십시오. 평강의 왕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현재>를 뚫고, 시간과 공간을 뚫고, 불안과 염려의 미래를 뚫고, 현재에 머물러 있는 우리를 향하여 카르페 디엠을 외치시며 마리아의 카르페 디엠으로 믿음과 감사와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