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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아침] 한가위 명상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7-10-07 19:19:10

칼럼,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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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명절을 보냈다. 추석 명절을 보내서인지, 가을이 성큼 다가와서인지 고유의 전통음식들이 부쩍 그리워진다. 음식을 향한 향수는 유년을 품고 있는 고국이 있기에, 여학교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고, 대학 캠퍼스의 푸르렀던 꿈까지 아스라히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어쩌면 명절이란 시제 앞에 설 때마다 뭉클뭉클 고향을 그리게 되는 것은 모국으로 부터 이방인으로 견뎌낸 아픔이나 상채기를 위로받고 싶은 심사였을찌도 모를일이다. 엄살이라할 수도 있겠으나 잔잔한 그리움에 잔약해진 마음이 애틋함으로 뒤척이고 있음을 덮어버리거나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일게다. 

 

고유의 명절마다  빠지지 않는 음식이 떡이다. 유구한 떡에 서린 그리움도 추억도 다양하다. 설날이면 떡국이 떠오르고 추석하면 송편이 떠오른다. 고국을 떠날 그 무렵엔 방앗간 앞은 쌀 바구니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꼬박 밤을 새며 떡집에 줄을 서기도 하거니와 큰 가마 솥에 솔 잎을 깔고 송편을 쪄내느라 하얗게 밤을 밝히는 것 쯤은 기본이었던 아나로그 시대를 거쳐온 터인데도 명절 풍경을 떠올리면 흐뭇하니 함박웃음을 짓게된다. 가랫 떡을 화로에 구워 꿀에 찍어 먹게 해주셨던 외할머니 모습이 떠올라 콧등이 시큰해진다. ‘참쌀 떡’ 하며 외치던 구성진 목소리도 그리움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명절 절기인데도 어쩜인지 자꾸만 마음이 기운다. 국내외 뉴스메이커로 전쟁 발발의 진원지로 둔갑할 것 같은 한반도 쪽으로. 기고만장한 북한의 위협에도 명절 연휴를 기해 수 많은 인파가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안전불감증이 명절을 명절답게 보낼 수 있게 해주었나 보다고 여길 수 밖에. 마음 한 구석으로 쓸쓸한 바람 한줄기가 시리듯 지나간다. 뭔가를 놓쳐버린 듯 허망함이 밀려든다. 명절이야기가 곁길로 접어들뻔 했다. 유년의 명절은 고운 때때옷을 입을 수 있는 날이요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행운의 날이었다. 소고기 산적에 시선을 두고 집안 어르신들께서 한 점씩 먼저 집어가시기를 고대하다가 기회가 되면 얼른 서너점을 집어와 밥 속에 푹 밀어넣고 한 점씩 야금야금 꺼내먹었던 미각의 기억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이방인의 그리움을 부추겨주고 있다.

 

명절음식 타령을 늘어놓는 동안 문득 여학교 시절 즐겨먹던 먹거리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 시절 학교 부근엔 따끈한 우동이며 어묵집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도시락을 먹었는데도 하교시간이 되면 어찌 그리 배가 고팠던지. 만복당 단팥죽의 짙은 팥향에서 묻어나는 달콤함과 쫀득한 찰떡의 묘한 조화로움이 새록새록 침샘을 자극한다. 수동으로 얼음을 가는 기계에 얼음을 올려놓고 빙글빙글 돌려서 분쇄한 얼음을 놋그릇에 담고 팥죽과 찰떡을 얹고 그 위에 미숫가루까지 곁들이면 최상의 빙수가 탄생했었다. 엄지 척할 수 있는 최고의 간식거리였었다. 지금이야 우유를 얼음으로 얼려서 각종 과일이 멋을 내고 후각까지 사로잡는 향신료가 첨가되고 흰 눈 꽃이 피어나듯 빙수 그릇마다 예술이 꽃피고 있는 설빙의 시대다. 눈 꽃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나고 치열한 삶의 열기까지 식혀주는 혀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유혹하는 청량음식으로 즐기고 있다. 하기사 텁텁한 입 속 같은 세상이지만 빙수 같은 시원 달콤함을 간간이 맛볼 수 있는 인생이라면 세상살이도 살아볼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국에서 만나지는 한가위지만 고향 산자락이 떠올려지는 것 만으로도 이방의 고단한 삶을 위로 받을 수 있나보다. 그리움이 담긴 고향이라는 소박한 단어만으로도 이국에서 내달린 노년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있다. 이미 고향은 옛 고향이 아니라 할찌라도. 명절이 다가오고 흘러갈 때마다 애틋한 향수를 고이 품고 중천에 두둥실 떠오른 달을 고향달인양 바라볼 수 밖에.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정지용 시인의 시를 가만히 읊조려본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궝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먼 향구로 떠도는 구름 //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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