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우리 마을 2차선 도로에는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고 가로수 길도 정비된 아담한 길이 있다. 길 양편으로는 주택으로 진입하는 길목마다 건널목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도로를 운전으로 통과하기도 하지만 공원을 찾을 땐 건널목을 가끔씩 이용하게 된다. 차로 이동할 때보다 건널목을 이용할 때면 왠지 불안해지고 긴장감이 고조되는데 의외로 무단횡단자가 많기 때문이다. 도시 고라니라고 불리는 전동 킥 보드 출현을 비롯해 신호에 아랑곳 없이 서슴없이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이들이 있어 번번히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한다. 예측 불가에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한 번은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가 ‘가도 된다, 안 된다’ 옥신각신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다니는 차가 없으니 그냥 건너자고 할머니 손을 잡고 이끄신다. 할머니는 손으로 신호등을 가리키신다.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할아버지는 혼자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너신다. 창피한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신 것 같다. 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 판단 능력이 떨어진 분별력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기에는 모두가 일사 분란하고 정상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 보인다. 젊고 활기찬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행동이 무딘 사람들도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왜 무단횡단을 하는 걸까. 심히 급한 일로 인해 저지르는 행위가 아닌 거의 무의식적인 행위로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의식에 잠재적으로 배어버린 일상 습관인 것 같다. 위반 반칙은 아주 작은 데서부터 기인되는 것으로 이 아주 작은,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소소한 습관이 알게 모르게 우리네 삶을 좀먹게 하는 일을 발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먼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 삶에서도 계속 진행해야 할 때가 있고 멈추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무조건 앞만 주시하고 가다 보면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인생 여정길에 잠시 잠깐 멈춤을 시도한다고 해서 무지막지한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이 직장 일로 밤새워 일을 하다가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 직업상 다이어트를 감행하다가 거식증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 늘 느끼는 것이지만 분명 본인은 몸에 이상 징후를 느꼈을 것인데, 제 명분이 선다는 착각하면서 독재자로 군림해온 일은 없었는지. 결국 비난 거리가 바닥 날때까지 상대는 받은 상처로 인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일구월심 공격에 집착하느라 적당한 때를 놓치고 멈추지 못한 채 쾌속 질주한 당당함에 만족하는 동안 가족은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동차처럼 너덜너덜 회복 불능의 인성이 된 줄도 모르고 마치 전쟁터의 독식 승자처럼 면류관 쓰기에 바빴던 적은 없었는지, 건널목 신호등 앞에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한편으론 사회와 학문과 예술 발전 계기가 때로는 틀에 박힌 규칙들을 과감하게 위반 반칙을 시도함에서 나온다는 정설도 있다. 진정한 자아 발견 또한 규칙의 틀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계 없는 안락함은 무기력과 게으름에 취하게 할 뿐 스스로가 마치 복제품처럼 타인의 삶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상투적인 습성의 비롯이 되기 십상이라 스스로를 안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곧 발전 계기가 된다는 것이요. 진정한 성공, 명분 있는 발전, 유익함을 추구하는 원천이 바로 위반 반칙의 옆모습이다. 구태의연한 삶에서 벗어 나고자 하는 몸부림 표현이 성장의 기회를 표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반 반칙에 대한 옹호가 불법을 조장하는 일과 혼동될 리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비도덕적 규범이나 행위와는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먼저 자기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격적 다스림이 이루어져야 위반 반칙의 이면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지금 정치 주체자의 교체, 이념의 기습, 올바름의 부재, 눈 앞에 전개되는 현실적 이익만 바라보는 독재자들의 일시적인 승리, 덧없는 영광으로 점철된 시대가 바로 지금의 시대상이다.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분별력은 자취를 감추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무단횡단이 자행되고 있다. 분명 깨달음 해야 할 것은 멈출 때를 알고 적기에 멈춰야 한다. 멈춤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멈추지 않고, 아니 멈추지 못하고 질주한다면 무서운 결과를 남길 뿐이다.
한 나라나 개인에게 어느 순간 빨간 신호가 켜질 때가 있다. 분명 멈추어야 할 순간이다. 결단코 무시해서는 안될 일이다. 개인이나 단체나 나아가서는 나라에 까지도. 위반 반칙만 제대로 다스린다면 생은 성공에 진입한 것이나 진배 없음이다. 먼저 위반 반칙을 제대로 다스릴 줄 아는 개인의 정신력과 나라를 보살피며 관리하고 통제력이 갖추어진 지도력이 이 어지러운 현실을 수습하여 바로잡으며 가다듬으려는 의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여러 미디어 매체를 봐도 온통 어둡고 우울한 소식 뿐, 어디 한 군데 상큼 한 구석이 없고 칙칙하니 변화난측이다. 수용해야 할 것과 멈추어야 함에도 멈출 줄 모르는 독선이 빚어낸 시대상이다. 나라와 국민이 서로에게 쓸모 있는 관계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