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변화부상한 일기 탓인지 마음이 분주하다는 엄살이 시동을 건다. 해야 할 일들과 감당해야 할 시간 비례가 넉넉하지 않은 분주함 속에서도 마음을 떠나지 않는 바램이 소화가 덜된 더부룩한 속처럼 명치를 누른다. 아련한 통증처럼 떨쳐낼 수 없으리 만치 생각, 감성, 의지를 붙들고 있다. 남은 시간이 모래시계가 줄어듦 같이 줄어들고, 세상 기류 흐름도 빠른 속도로 일상을 선회하고는 급한 바람을 일으키며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작은 바램을 외면치 않으려 염원으로 기억하며 명심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과욕은 아닐까 주춤거리게 된다.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가치. 의미, 만족의 정도가 사회 일원으로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감히 바램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라 언감생심일 수 밖에 없는 일인데. 악기를 연주하 듯 영혼을 쓰다듬는 깊은 음질의 세계 속에서 안정된 음률로 평안과 위무의 도취에 잠겨 감성 깊은 곳에까지 불꽃을 터 뜨리 듯 희열을 뿜어 올릴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싶은 바램과 염원을 여태껏 품고 있다. 깊은 밤 하늘에 나만의 ‘맑은 별 하나로’ 남겨두고 싶은 간곡한 바램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여자,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편안을 베푸는 여자, 주변 환경이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늘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 여자, 대체적으로 이런 여자들이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느 것에도 후한 점수를 얻어내기 힘듦에도 불구 하고 배우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들이 곁을 떠나지 않는 터라 인정해 주어야 할지 접어야 할지 종잡기 힘든 노년 아낙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사람마다 가슴에 맑은 별 하나를 심어두며 살아 갈 것이란 생각에 위로를 얻는다. 인생의 마지막 귀의는 영원일 진데 궁극의 종착지를 뉘라서 부인할까 싶지만, 이 땅에 출생을 신고하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기쁨이 잎을 내고 푸르른 줄기로 탐스러운 열매를 내기까지 각자가 지닌 맑은 별 하나를 잃지 않으려는 심중함은 쉽게 포기할 수도 없음이요 포기해서도 아니될 일이지 않을까. 산책길에서 무심코 발견한 일이다. 높은 하늘 공간에서 대지 위로 떨어지듯 내려오는 새 한 마리도 살포시 땅 위로 내려와 안전하게 착지하는 날개 짓 조차도 우리네 인생 여정과 닮아 있다. 절망, 허무, 외로움 같은 안정되지 않은 위험에서 모면하려 거나 피하려는 자기방어 에너지가 함축하고 있는 본능적 구조 본성의 기질이 자연발생적으로 발휘 되는 것이라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 간절한 염원을 담은 맑은 별로 깊은 밤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기에 맑은 별 하나, 고이 품고 싶은 조심성으로 그 꿈을 키워보려는 것이다.
태어나기 이전의 테두리를 기억해낼 순 없지만 어떤 유형이든 원천의 기쁨은 있을 것이라는
짐작 정도는 상상력 한계 범위와 사회학적 미지의 둘레에서나 문화적 범주 안에서 공상이든
상상이든, 가상 공간 구상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월의 단층이나 시간 단면에서 아예 멀어져 있다해도 우주 생성과 인류 생명의 신비를 통한 희열은 존재했을 것이라는 생 각이 맴돈다. 맑은 별하나 간직하고 살아가노라면 하늘을 바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가슴에 맑은 별이 새겨진다. 밤 하늘이 아름다운 것도 별들이 아름답기 때문이요 내가 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별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는 기쁨 탓에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어둠이 찾아 들어야 별들이 하나 둘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에 어둠이 찾아 들 때 비로소 맑은 별을 발견하게 된다.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 보게 되는 것이요 어둠 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의 밝음을 볼 수 없음이다. 별은 밝은 대낮에도 하늘에 떠 있지만 어 둠이 배경이 되어주지 않으면 별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이라서, 어둠이 찾아와야 별을 바라볼 수 있음을 소중하고 귀한 메세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두운 하늘에서 별을 바래 듯 힘껏 세상을 일구어가다 보면 별 빛 같이 또랑또랑하게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생에의 길목 마다 반복되곤 하는 형벌 같은 세상과 마주하더라도 맑은 별 하나 가슴에 고이 품으면 맑은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필연이 아닐까 한다.
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허하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별을 바라 보노라면 따스 함, 맑음, 푸르름, 동심, 꿈, 고요함 가운데서 살아있음을 반짝임으로 명멸하며 희망을 안겨 준다. 변하지 않는 생존의 감각이 살아 있는, 마치 구원자이 듯 손을 뻗치고 있는 별들의 운 행이 초월의 표상으로 밤이면 우리를 만나주고 있다. 어린 시절 한 여름 밤이면 오 남매가 나란히 평상에 누워 별을 세었던 아련한 그 날이 떠오른다. 이국 밤 하늘을 우러르는 노년의 아낙에게는 겨울 밤 하늘이 더 맑고 깊어서 별들이 유난히 아름다운 반짝임으로 다가온다. 세상이 차가울수록 가슴에 품은 맑은 별 하나까지도 더 아름답게 명멸하는 겨울 밤이기를 바램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