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풀로토의 오페라 <마르타> 중에서 “꿈과 같이” 감미로운 아리아가 가슴을 흔든다.
현실에서는 마치 꿈결처럼 허황한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꿈속에서는 냉엄한 현실에 마주치는 무력한 모습을 발견한다.
현실과 꿈속의 이중적인 의미를 심층 분석하며 자신을 깊이 성찰한다.
삶의 이중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실의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삶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현실에서 삶의 긍정을 위한 변화의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가?
부조리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잠재의식이 순화되는 유연한 의식의 명료성을 지녀야 하리라.
삶의 오묘한 역설에서 내면의 맑은 물줄기가 솟구치는 명쾌한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
현실에서 어려움의 심각성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현실의 결핍과 험난함을 넘어서는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왜곡된 현실을 자각할 능력은 삶의 본질의 실체적인 접근에 있어서 민감하다.
삶의 문제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직관(혜안)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삶의 편향적인 시각을 지닌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만나는 때가 있다.
경건의 훈련이 전혀 되지 않아 내면을 가꾸지 못한 모습에서 원만한 인품을 기대할 수 없다.
삶의 옳고 그름에만 치우쳐 고정관념과 편견에 의한 판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니 말이다.
사유체계의 합리성과 균형을 잃은 독선과 아집은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거스르며 삶의 규범을 헤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무례에 가깝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간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객관성의 결여로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실체에서 인격 도야의 기대는 더더욱 할 수 없겠다.
살아가면서 불협화음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삶의 태도가 대인관계의 정석이 될 터이다.
건전한 인품의 대인관계는 고통으로 단련된 세계관과 이타적인 인간애에 대한 이해가 깊다.
“칼 융”의 표현에 의하면 “모든 인격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다움(Selfhood)과 자기의 실현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자기다움을 잃은 위선과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순수를 지향하는 삶은 윤리성을 지녀야 한다.
삶의 보편성 원리에 의한 심오한 의미와 순수함을 찾는 깊은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삶의 직관에 의한 가치 있고 소중한 삶을 찾아가는 진취적인 기상과 도전정신을 말함이다.
자기실현에 있어 성숙의 필요한 요소는 고통으로 얼룩진 고결한 영혼과 내면의 치유이다.
자신의 고통과 성찰이 담긴 순수한 정체성의 회복을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더러는 정신적 심적으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상처를 받은 것만 기억하지 자신이 생각 없이 불쑥 쉽게 한 말이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치열한 성찰이 따라야 한다.
치유의 관점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관점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치유의 가능성은 수용(납)과 더불어 시작된다.
정신적 심적인 고통에 시달렸던 사람은 마음을 열고 용납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치유의 감정을 승화하는 적극적인 의지의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과 조화를 이룬 유연한 사유의 체계는 자기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
삶의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일상에서 인간 영혼의 빛과 내면의 선율이 삶의 열정을 품게 한다.
영혼과 내면이 치유되어 생명력이 살아나며 새로운 변화를 맞는 삶의 모습은 활력이 넘친다.
인간관계를 통해 삶의 다양성을 체험하는 계기가 됨을 감사한다.
자신의 삶에서 사랑의 선한 가치를 실현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신비로운 대자연의 질서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며 인간관계에서 환희의 만남을 열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