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사람들이 서로 서로를 돕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도 위대하며 또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일에 진실로 귀 기울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는 그 엄청난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다 할 수 없다.
현대 심리학으로 인해 서로 서로를 돕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든 정신 요법의 중심에는 자그마한 어린애가 자기 엄마한테 모든 걸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모든 걸 얘기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 관계가 놓여져 있다. 아무리 자기가 최소한 어떠한 사람에게라도 이해되고 있다고 느끼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의 완전한 삶을 발견할 수도 없고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도 없다.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보려는 사람은 자유로 선택하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친구에게 모든 걸 완전히 털어 놓아야만 한다.
“부부 사이의 대화와 마찬가지로 세상과 세상 삶들 사이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들은 대부분 소리가 없는 것들이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공유되는 즉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말 즉 대화가 생겨난다. 네가 나에게 비밀을 애기한다면 그 때 너와 나는 네 비밀을 공유했고 너는 내게 그것을 전달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네가 누구라도 걸 내게 알리고자 한다면 너의 비밀 중 한 가지 이상 더 많은 것을 내게 애기해야만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네게 얘기할 수 있는 것처럼 너는 나에게 너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어서 누구나 굉장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자신의 진실된 얼굴 위에 가면을 쓰는 것 자신의 진정과 진심을 속이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 왔다. 이러한 것은 우리들 내부의 어딘가에 자신의 참모습이 숨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마 이런 진짜 자아는 하나의 정적이고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실체일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참모습이 밖으로 나타나는 때도 있고 또 본래의 나를 위장 해야만 하겠다고 느끼는 수난들도 있다. 이렇게 진정한 자아가 고장된 것이라고 말하는 데는 아마 약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견해가 도움이 되기 보다는 도리어 좋지 않게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내부에는 고장되지 않은 진정하고 참된 인격이 있다. 왜냐하면 분명히 “인간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이 되어가는 상태. 즉 과정중인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인간으로서의 “어떤 것”이라면 그것은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평가하고 존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욕망하고 바라고 믿고 그리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나를 정의하는 것들이며 이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 내 이성과 감정이 주제 불능적으로 막혀져 있지 않는 한.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정의하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영원히 변화하고 있다.
나의 인성이라는 것은 나의 내부에 있는 작고 딱딱한 핵이 아니다. 또 아주 진실하고 믿을 만하고 영구 불변이고 고정된 완전히 형성된 상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성격은 다이내믹하게 움직인다. 다시 말하자면 네가 어제 알았다면 오늘 네가 만난 나와 어제의 내가 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더 많이 살았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깊이를 느꼈고, 더 괴로워했고, 기도했다.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다. 나에게 고정되고 고칠 수 없는 한계를 정하지 말라 왜냐하면 난 일상 생활에 있어서의 기회를 잡으면서 끊임없이 그 한계를 벗어나려 하니까. 내가 변화할 때 놀라운 기분으로 내게 접근하라 변화를 나타내는 얼굴과 손과 목소리를 관찰하라. 내가 변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네가 이것을 감지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까지는 내가 누구라는 걸 너에게 말하기를 겁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