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전 대비 30~80%↑
한국 소주를 즐겨 마신다는 한인 이모씨는 요즘 소주 매대에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 소주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세일 품목도 줄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팬데믹 이전엔 ‘진로’나 ‘처음처럼’을 2달러에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4~5달러로 크게 올랐다”며 “식스팩을 구입하면 족히 30달러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비단 소주값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개 사료 가격도 35파운드짜리가 37달러에서 46달러로 뛰어 싼 것으로 바꾸었고, 일과처럼 들렸던 커피숍 출입도 줄였다. 이씨는 ”이번 주에도 마켓에 가면 또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예전에 비해 생활에 여유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번 치솟은 물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물가 인상율은 지난해 6월 정점을 찍은 뒤 둔화세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일상 필수물을 중심으로 생활 물가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급등했다. 이러는 사이 임금과 소득보다 물가가 훨씬 더 많이 뛰면서 한인을 비롯한 미국 소비자들의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 심지어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물가가 오르면서 가난해졌다“는 볼멘 소리까지 나온다.
13일 월스트릿저널(WSJ)은 1년 넘게 지속된 물가 상승세가 한풀 꺾이고 있지만 생필품을 중심으로 팬데믹에 비해 크게 오른 생활 물가에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WSJ이 지난 2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조사 대상자의 3분의 2는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지난 몇 년 동안 수입은 늘었지만 물가 상승에 미치지 못해 실질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응답자는 75%에 달했다.
실제로 주요 생필품의 가격은 팬데믹 이전인 2020년 2월에 비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80%까지 올라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 시장 조사업체인 닐슨아이큐에 따르면 표백제는 2.78달러에서 4.87달러로 올랐다.
또한 아기용 휴지는 4.25달러에서 6.64달러로, 식용유는 5.22달러에서 8.04달러, 우유는 2.7달러에서 3.26달러로, 라면은 0.62달러에서 1.82달러로 각각 상승했다. WSJ은 팬데믹 당시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가격이 급등한 것은 이해하고 있지만 엔데믹 시기에도 불구하고 내려가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실망의 기저에는 실질 소득이 줄어든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아무리 높아도 임금과 소득이 그 이상 오른다면 살림살이가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금 인상율이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일상의 삶이 더 팍팍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은 생필품을 구입하는 데 더 쓰기 때문에 그만큼 타격이 더 크다.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신용카드 부채가 증가하고 연체율도 급등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