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가상화폐사기 수사 급물살
전 세계적으로 400억 달러의 피해를 가져온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의 미국 송환을 결정한 몬테네그로 법원의 결정이 나오면서 그가 미국에서 받게 될 민·형사 재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사기 혐의에 대한 형량이 높아 최고 100년형까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고, 권씨의 경우 형사 기소 뿐 아니라 미 증권 당국의 민사소송까지 제기돼 있어 이번 가상화폐 사기 사건과 관련 권도형과 관련자들의 공모 여부 등 전말이 드러날지 주목되고 있다.
■미국 송환 배경
한국과 미국 사법당국이 모두 권씨의 인도를 요청한 가운데 권도형씨의 미국 송환 결정이 나온 것은 일반적인 범죄인 인도 절차에서는 해당국 법무부 장관이 송환국 결정 주체가 돼야 하지만 권씨가 범죄인 인도와 관련한 약식 절차에 동의한 이상 법원이 결정 주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권씨의 현지 법률 대리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도 법률적인 근거를 들어 송환국을 결정하는 주체는 법무부 장관이 아닌 법원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 폈다. 로디치 변호사는 그러면서 권씨가 법적으론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송환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몬테네그로 법원은 권씨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 결정 근거는 공개되지 않았다.
권씨 측이 그동안 한국행을 원한 것은 사기 범죄에 대한 일반적인 형량이 미국에서 훨씬 더 높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됐다. 실제로 권씨가 송환돼 미국에서 재판받게 되면 중형을 선고받고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미국 언론은 예상했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다.
뉴욕 연방 검찰은 지난해 3월 권씨를 형사 기소하고 몬테네그로 당국에 그의 인도를 요청해 왔다. 뉴욕 검찰은 그를 송환하는대로 구금해 형사 법정에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받는 범죄 혐의는 증권 사기 2건, 상품 사기 2건,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2건, 사기 음모, 시장 조작 음모 등 총 8가지다.
권씨는 형사 재판과 별도로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소해 진행 중인 민사 재판도 받게 된다. SEC는 권씨가 테라 폭락 사태와 관련해 최소 400억 달러 규모의 사기 행각을 벌였다며 권씨와 테라폼랩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권씨가 미국으로 송환되면 오는 3월25일 뉴욕 연방법원 법정에 서게 된다.
■공모 조사 주목
권도형씨의 미국 송환 결정으로 그와 함께 동반 도피했다가 체포돼 한국으로 송환된 한창준(37)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그리고 권씨와 함께 테라폼랩스를 공동창업했던 차이코퍼레이션 전 총괄대표인 신현성(미국명 대니얼 신)씨와의 공모 여부가 미국 법정에서 드러날 지도 관심사다.
한창준씨는 한국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하동우 부장검사)는 21일(한국시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한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한씨는 테라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속여 루나 코인을 판매·거래해 최소 536억원의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신현성씨 등 공범이 취한 부당이득을 모두 합하면 4,629억원 상당이다.
신현성씨의 경우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거래 조작 등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한국에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신현성씨가 설립한 차이코퍼레이션은 테라와 연동된 결제 서비스 차이페이를 출시한 회사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8월 미국 법원이 신씨에 대해 SEC가 한국에 사법공조 요청을 하도록 승인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EC는 소송에서 테라폼랩스가 차이코퍼레이션과의 거래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관련 기술을 사용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검찰 역시 블록체인 지급결제 서비스는 금융 규제상 허용될 수 없어 처음부터 실현이 불가능했고, 권도형씨와 신현성씨, 한창준씨가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추진되는 것처럼 전 세계 투자자들을 속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