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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호기심과 치매

지역뉴스 | | 2023-09-06 14:02:58

전문가 에세이,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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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무언가를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충동적 욕구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주로 먹이와 짝짓기에 집중되어있는 동물에 비해 인간은 보상이 없는 대상에도 호기심을 품는다. 

그리스 신화 ‘판도라 상자’ 이야기가 인간의 호기심을 잘 표현해준다. 에피메테우스 신의 아내 판도라는 남편이 벽장 깊숙이 숨겨둔 항아리에 호기심이 많았다. 항아리 뚜껑을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말에 궁금해서 좀이 쑤셨다. 어느 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남편이 출타한 틈을 타서 뚜껑을 여는 순간 미움, 질투, 시기, 분노 등 모든 나쁜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인간을 괴롭히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참기 어려운 마음상태가 호기심이다. 힘써 알아봐야 별로 얻을 게 없는데도 눈앞의 궁금증을 해결해야 마음이 시원해진다. 불확실성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모든 연령층에서 생기지만 전 전두엽 뇌세포들의 연결이 활발해지는 초등학생 시절에 특히 많고, 이 후론 서서히 줄어든다. 노인이 되면 호기심이 떨어져 질문도 말수도 줄어든다. 익숙함에 안주하고 싶은데 뭔가를 자꾸 알고 싶어 하는 충동이 피곤한 감정이 될 수도 있다.    

호기심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인간 본능의 하나로 잠재의식 속에 묻혀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정 중 뇌에 정보를 많이 주면 잠자던 호기심이 깨어난다. 19세기 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호기심은 “보다 나은 인지기능을 향한 충동, 즉 잘 알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어렵고 복잡한 상황이나 환경을 기꺼이 받아들여 창의성을 높이려는 소망”이라 정의했다. 인간에게 호기심이 없었다면 지능을 높여주고 성장을 촉진시키는 삶의 원동력인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이루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다.

정신과의사로 일하며 보통 3가지 성격에서 호기심이 많은 것을 보았다. 하나는 이것저것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항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잡지를 들춰보는 등 오지랖 넓은 사람, 다른 하나는 세상사에 너무 걱정이 많고 알 수도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보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 또 하나는 무언가 시작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다. 오지랖 넓은 사람은 양극성 장애 환자에, 원시시대 때부터 지녀온 공포 유전자의 힘이 강해 너무 안전에 신경 쓰는 사람은 불안증 환자들에 흔했다. 또 매사를 완벽하게 하려는 사람은 강박증 환자들에 많았다. 

공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호기심 장애(Curiosity disorder)라 부르는 질환이 있다. 세상사에 호기심이 너무 많고 가끔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생명에 위협을 주는 무모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자주 생긴다. 그들은 특정한 것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여 해답을 찾을 때까지 잠도 못 잔다. 무엇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른 아무 것도 못한다. 이런 사람의 뇌세포는 항상 예민한 과다반응 상태로 활성화되어있다. 처음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나 자극이 계속 반복되면 뇌의 만성적 활성화를 일으킨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면역력도 떨어져 몸과 마음에 해를 끼치게 되는 질환이다.

한편 호기심이 적어지면 생명력이 약해져 무기력해진다. 실제로 해마를 적당히 자극하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켜 불안과 우울감을 적게 만든다. 정서가 깃든 기억들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호기심을 잘 보존하여 후에 특정한 추억으로 남겨놓을 수도 있다.

한번 진행하면 다시는 후퇴할 수 없는 일방통행 질환인 치매가 병 중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다. 그런 치매 환자도 추억이 담긴 호기심 많았던 기억은 늦게까지 지니고 있다. 노인이 되면 치매를 늦추기 위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치매 환자에게 기억을 강요하는 것은 금물이다. 앨범 사진 등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주어야 된다. 긴 세월을 한 곳에서 함께 지낸 선배 한분은 은퇴 후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다. 뇌의 가소성 능력을 활용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아내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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