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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여름과 가을이 만나는 소리

지역뉴스 | | 2023-09-01 08:24:26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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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시인·수필가)  

 

1등급 강도 허리케인 이달리아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만들더니 햇살은 남겨진 더위를 죄다 풀어내야 할 것처럼 다시금 폭염을 풀어놓을 기세다. 허리케인이 해안선 쪽으로 빠져 나가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노 부부는 또 하루가 줄어 들었구나 싶어 애꿎은 하늘만 나무라 듯 흘겨 보게 된다. 허리케인 경로를 지켜보면서 방콕을 하기로 했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행사처럼 허리케인이 생성되었기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한다지만 비가 질금질금 내리는 흐린 하늘이 몹시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 기상이변으로 남겨지는 자연재해가 심상치 않다. 많은 과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경고해왔던 지구 환경이 눈 앞에 닥치고 있는 상황인데도 세상은 여전히 하던 대로, 살던 대로 여념없이 살아가고들 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내 것과 네 것을 주장하는 다툼과 목소리가 커야 정의롭다고 곡해한 소리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네 후손들이 살아가야할 지구가 이토록 힘들어진데 대하여 전 인류가 세계 지도자들이 더 깊은 경각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달리아가 지나간 주변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물에 잠긴 건물이며 토네이도에 휘둘린 해변과 식물들에게 까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무가 쓰러지고, 정전이 속출하고 홍수로 주요도로들이 폐쇄되었다. 뿌리째 뽑힌 나무들의 끝나버린 생명력처럼 가혹한 자연재해가 계속 인류를 괴롭힐 것이다. 강풍에 시달린 식물들은 이미 윤기가 바랬고 들풀들의 생명력도 끝난 것으로 보인다. 푸름으로 청청한 잎사귀는 마음을 사릴 수 없다는 듯 축 늘어진 채 푸름을 공유할 날이 줄어듦에 조급 해지는 모습이 역력하다. 앞으로 최소한 몇차례나 허리케인이 발생할지. 연례 행사처럼 몰려오는 태풍들로 하여 다가오는 있는 그 시점이 시간 트라우마가 된다. 마치 LP판 바늘이 튀어 의도하지 않은 구간 반복이 통제되지 않듯 해마다 기다리고 싶지 않은 불안이 재생된다. 머물러 주었으면 싶었던 시간들은 빠른 물살처럼 지나가고 얼른 지나갔으면 하는 날들은 구비를 도느라 느려질 수 밖에 없는 흐름 앞에 초조해질 수 밖에. 해마다 여름 끝 무렵 즈음이면 힘들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싶지만 남은 여름 자락을 안전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보채듯 불안하다.

자연순환 흐름에 실려 속수무책 가을이 선뜻 들어서기만을 기다려야 할까. 지구 온난화로 인해 태풍 세력은 갈수록 강력해질 것이다. 언뜻 찬 기온이 느껴지기만 해도 혹여 태풍이 발생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다. 다행히 찜질방 같은 더운 기운이 수그러들고 폭염은 한결 누그러져 아침 저녁 서늘한 바람 결이 얼핏 끼어드는 덕에 한결 가볍게 산책길을 나서게 된다. 햇살도 가을 햇살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터라 긴 여름의 고달픔 속에서도 잘 견디어낸 식물들의 씨앗이 여물어가는 진풍경이 보이기 시작 한다. 계절이 피워냈던 꽃들이 지고 그 꽃이 진 자리에 탐스러운 씨알이 맺히고, 넝쿨에 매달린 포도 열매는 초록에서 서서히 보라빛으로 변신 중이다. 사과밭에도 복숭아밭에도 수확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기대에 상처 입히는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소망드린다. 열매가 맺히는 길목 마다에 따가운 가을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결이 결실을 도와주기를 기도해야겠다. 

그리도 덥고 힘든 나날을 묵묵히 제 몫을 다 해낸 식물들에게 만이 허락된 결실의 가을이 소리 없이 다가오며 손짓을 보내고 있다. 절기로 입추, 처서를 넘겼지만 아직 남은 여름 폭정의 가혹함에 발목이 잡혀가면서라도 기어코 가을날을 만나고 싶은 바램을 알아차린 것일까. 과연 여름과 가을이 서둘러 만나고 있는 것일까. 세상 순리는 어쩌면 이리도 모든 것에 대가를 오롯이 치뤄야 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지만,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겹고 힘이 부쳐도 묵묵히 할 일을 다 치룬 식물들에게 만은 포상이 주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가을 결실이 행복하고 자랑스러울 날이 나릿나릿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흐뭇하게 기대하며 기다리게 된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저만치서 들려오는 것 같아서.

기다림을, 그리움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계절 가을을 허리케인 이달리아가 데리고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뉘엿뉘엿 노을이 엷어지고 하루 해가 점점 짧아지는 것 마냥 그토록 찬란한 윤기를 머금었던 초록이 또 다른 저무는 색상을 연출해 내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 기온으로 보면 가을 기색이 엽엽한데 여름은 제 소임을 다 이루고 가을에게 길을 열어주려 비켜서려는 추임새다. 허리케인 이달리아가 떠난 자리에서 가을을 꿈꾸게 되다니.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실망도 자연재해 앞에선 속수무책이지만 한바탕 궂은 날씨를 겪을 때면 미움이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가을이 다가오는 조짐일까. 어디메 쯤에서 가을이 들어서고 있는 것일까. 설렌다. 가을 서정에 젖어 들고 싶은데, 가을이 오는 소리가 저 만큼 여름 끝자락과 가을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라게 한다는 갈바람을 타고 홀연히 다가올 가을날을 기다리면서 잠시 평온한 정적에 잠겨보았다. 여름과 가을이 만나는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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