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니콜 정 회고록 '내가 알게 된 모든 것'
친부모 찾아가는 여정 담은,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
"넌 너무 못생겼어. 그러니까 네 부모님도 널 버렸지!"
자기 두 눈을 양옆으로 쭉 잡아당기더니 비아냥거리면서 엄마 친구 아들이 했던 말이었다. 평소라면 반격을 했을 테지만, 그날은 어떤 앙갚음의 욕설도 목구멍에 턱 걸려 사그라지고 말았다. 엄마, 아빠와 전혀 닮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들었다. 고요하고 깊은 무언가, 소중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를.
미국 작가 니콜 정이 쓴 '내가 알게 된 모든 것'(원제: All You Can Ever Know)은 입양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저자의 회고록이다. 한 소녀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성장통과 가족의 의미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그렸다.
저자는 조산아로 태어났다.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 친부와 친모는 인큐베이터 비용을 치를 만한 의료보험도, 돈도 없었다. 최선의 선택은 입양을 보내는 것이었다. 때마침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백인 부부가 입양할 아이를 찾고 있었다. 서로의 조건이 맞으면서 입양은 순풍에 돛달 듯 진행됐다.
아이는 새 가정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커 가면서 글쓰기를 좋아했고, 문해력이 뛰어났다. 학교 성적도 우수했다. 하지만 애들과 다른 피부색 탓에 일상적 괴롭힘에 시달렸다. 학교에서 이른바 '왕따'를 당한 것이다. 양부모에겐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아이는 점점 자신 안으로만 침잠해 들어갔다.
"나는 자주 생각했다. 만약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고 요정이 내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복숭앗빛 감도는 크림색 피부와 수영장 물처럼 짙은 푸른색 눈동자, 칠흑이 아닌 금실 같은 머리카락을 달라고 할 거라고."
겹겹이 쌓여가는 치욕 속에 마음 한편엔 "늘 양부모님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리했다. 동시에 친모와 만나는 상상의 나래도 폈다. 자신이 태어난 시애틀의 한 거리에서 지나가다가 운명적으로 이끌리는 장면을.
시골 소도시를 벗어나고픈 생각에 동부에 있는 존스홉킨스대학에 진학한 그는 그곳에서 많은 동양인 학생을 보며 입양인이자 아시아인이란 정체성이 자기만의 유산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친부모의 행적을 찾기 시작한다.
책은 한 소녀가 겪은 차별과 따돌림,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깊이 모를 상실감, 친가족을 찾아 나서며 새롭게 마주한 진실과 대면하는 이야기 등을 담았다. 마음속에서 휘몰아친 수십 년의 세월이 담긴 웅숭깊은 서사가 던져주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누구나 삶의 얘기는 복잡다단하다. 달콤한 줄 알았지만 먹어보면 쓴 열매 같은 걸 인생에선 자주 만난다. 저자의 이야기도 그렇다. 뿌리를 찾아 나선 건 오랜 꿈이자 열망이지만,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위험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친부모를 찾은 게 마냥 행복한 일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문득 친모에게 들은 적 있는 말이 스치듯 떠올랐다. '입양에 대해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게 있다면, 이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절대 끝이란 없어.'…이제 내가 알게 된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하고 다시 배워 내 아이들에게 전해 주어야 했다. 애비(저자의 딸)도 언젠가는 내 친모에 대해 알아야 할 테니까."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친부모를 찾으며, 친자매를 얻으며, 저자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갔다. 피부색이 달라 백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됐던 그가 유년의 상처를 딛고, 이제 딸아이와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한글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참고서 맨 앞장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새로 배워 이제 익숙해진 글자 행렬을 죽 훑어보았다. 그것들은 우리 둘을 위해 음절과 문장,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로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궁금증 가득한 표정에 미소로 답했다. '그래,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책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워싱턴포스트·타임·보스턴글로브 등 주요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원더박스. 정혜윤 옮김. 36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