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살인 폭염’… 데스밸리보다 더 더워
지난 23일 텍사스주의 빅벤드 국립공원. 섭씨 48도에 달하는 폭염 속에서 하이킹을 하고 있던 소년(14)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아버지(31)는 소년의 형에게 “잠시 돌보고 있으라”고 말한 뒤, 도움을 청하러 홀로 차량을 몰고 달리다 절벽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소년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틀 전인 21일에도 기온이 39.4도까지 치솟은 한낮에 텍사스주 팔로 듀로 캐년 주립공원을 오르던 17세 소년이 사망했다. 초여름 이상고온이 잇따라 비극을 야기한 셈이다.
■펄펄 끓는 미국
최근 3주째 텍사스주를 펄펄 끓게 만든 건 바로 ‘열돔(고기압이 정체하면서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현상)’이다. ‘거대한 찜통’이 형성된 결과, ‘살인 더위’가 덮쳤다는 얘기다. 실제로 여름 문턱인데도 텍사스주 곳곳에선 역대 최고기온 기록이 연일 경신되고 있다.
텍사스 남부 델리오와 라레도는 115도를 찍었다. 이는 데스밸리보다도 더 높은 기온이다. 샌안젤로의 수은주도 지난 20, 21일 이틀 연속 역대 최고인 113도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동남부 연안 코퍼스크리스트의 체감온도는 무려 123도로, 비공식 최고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국립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미국 전체 인구의 14%인 약 4,500만 명이 폭염에 신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더위는 이번 주 텍사스 북·동쪽인 애리조나·앨라배마·오클라호마·아칸소주로까지 세력을 확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한 다음 달 4일까지 불볕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도 놀라는 기록적 열돔
폭염은 해가 갈수록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더 더워지고, 더 오래 지속되며, 더 빈번해지고 있다. 2018년 미국의 ‘국가기후평가’ 보고서는 “1960년대 연평균 2회 발생했던 폭염이 2010년대 들어 연평균 6회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폭염은 그 자체로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가뭄 및 산불이라는 ‘또 다른 재앙’도 부른다.
이 같은 현상은 역시 기후변화 때문이다. 제프 베라델리 WFLA TV 수석 기상학자는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전문가들조차 놀랄 정도로 극심한 기록적 열돔이 발생하고 있다”며 “열돔은 기후변화 없이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더 늘었다
문제는 기후변화의 충격 요법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 세계의 화석연료 사용량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82%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CNN방송은 에너지연구소와 컨설팅업체 KPMG·커니가 공동 발간한 ‘세계 에너지 통계 리뷰’를 인용해 26일 이같이 보도했다. 석유와 석탄, 가스 등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특히 오염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석탄은 소비와 생산 모두 늘었다. 전 세계 석탄 생산량은 전년 대비 7%나 급증했고, 소비량도 0.6% 증가했다. 화석연료가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결과, 에너지 부문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전년 대비 0.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7.5%에 그쳤다.
줄리엣 데이븐포트 에너지연구소 회장은 “지난해 파키스탄의 파괴적 홍수와 북미·유럽을 강타한 기록적 폭염 등 기후변화가 초래한 최악을 목격했다”며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지구 온도 평균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한) 2015년 파리기후협약의 요구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