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에 기록적 수요, 항공료·숙박 등 올라
LA 한인타운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한인 이모씨는 이번 여름 휴가 계획을 다시 세우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애초 친구들과 함께 플로리다 올랜도로 날아가 디즈니 월드를 비롯한 테마파크를 돌아볼 계획이었다. 문제는 여행 경비가 너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인플레가 진정됐다고는 했지만 먹거리 물가는 떨어지지 않고 있는 데다 항공료에 호텔비, 렌터카 비용도 너무 올라 부담이 커졌다”며 “그렇다고 매일 허리띠를 졸라 맬 수는 없어 여행지를 변경해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엔데믹을 맞아 여름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항공료와 호텔비 등 여행 경비도 크게 오를 전망이어서 여름 여행 성수기 특수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고물가에 가계 소비 여력이 줄면서 이씨처럼 휴가 계획을 축소하거나 미뤄 여행 씀씀이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여름 여행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의 근거는 지난달 메모리얼데이 연휴 기간 여행 수요가 급증해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선 것에 있다.
연방교통안전청(TSA)에 따르면 지난달 26~29일까지 미국에서 항공기를 이용한 여행객은 979만명으로 2019년 메모리얼데이 연휴에 비해 약 30만명이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TSA는 메모리얼데이 주말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하루에만 274만명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름 여행 수요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여행 수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크게 들먹이고 있는 여행 관련 경비다. 호텔 마케팅 데이터 업체인 STR에 따르면 지난 5월 말을 기준으로 미국 내 호텔의 평균 숙박비는 1박에 157달러로 전년 150달러에 비해 57달러나 올랐다. 단기 숙박인 에어비앤비의 경우 지난달 4월 평균 316달러로 1년 사이에 1.4%나 상승했다.
캘리포니아의 개솔린 가격 역시 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19일 기준으로 가주 개솔린 평균 가격은 갤론당 4.869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6.401달러 보다는 떨어졌지만 전국 평균 가격인 3.578달러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항공 수용 증가로 항공권 가격도 상승세다. 항공기의 출도착 지연이나 운행 취소는 인력 충원과 함께 많이 개선됐지만 좌석 공급량은 크게 늘지 않은 탓이다. 여행 전문 웹사이트인 호퍼에 따르면 이번 달 들어서 국내선 왕복 항공권 평균 가격이 328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400달러보다는 떨어진 가격이지만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비해 4% 상승한 가격이다.
미 여행업계는 항공료와 호텔비를 포함한 여행 경비가 상승하고 있는 것을 우려의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다. 가뜩이나 생활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여행 경비마저 상승하게 되면 여행에 나서려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4.0%로 2021년 3월 이후 2년여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지만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목표치인 2%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매체 CNBC와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이달 초 미국 성인 4,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는 최근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여행과 같은 경험 기반 지출과 관련해선 응답자의 62%가 지출을 줄였다고 응답했다.
뱅크오프아메리카의 안나 조우 이코노미스트는 ”여행업계는 다른 업계에 비해 비교적 경기가 좋은 부문이지만 여행 경비를 줄이려는 경향 속에서 경기 둔화의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