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엘리트 학원

[조윤성의 하프타임] '석회화'된 정치

지역뉴스 | | 2023-06-06 12:39:21

조윤성의 하프타임, LA미주본사 논설위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조윤성(LA미주본사 논설위원)

 

최근 한국의 한 방송국 시사프로그램에서 정치적 성향이 완전 반대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또 연인이나 부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첫 번째 질문에는 약 54% 정도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두 번째 질문에는 36% 가량이 그렇다고 밝혔다.

정치적 양극화가 사회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취지의 조사였다. 정치적 생각이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결과이다. 하지만 설문 결과가 정치로 인해 무수한 관계들이 망가지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종류의 설문에서는 긍정 비율이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투표를 할 것인지 의향을 묻는 설문조사를 선거 수개월 전에 하면 항상 실제 투표율보다 훨씬 많은 긍정 답변이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

정치적으로 완전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처럼 용이한 일은 아니다. 정치적 생각과 인식은 삶의 기본적인 가치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성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가 극단화되면서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비극이다. 이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단계를 넘어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악마화’하는 극단적인 단계로 치닫고 있다. 이런 적대적 분위기에서는 생산적인 토론이나 대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난 몇 달은 이런 이념적 분열 때문에 두 동강 난 미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트럼프 기소를 놓고 갈라진 미국, 그리고 공화당이 다수인 테네시 주 의회가 총기규제 시위에 참가한 흑인의원 2명을 제명한 초유의 사태(두 명은 나중에 다시 복귀했다)는 미국사회의 정치적 갈등이 어느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남북전쟁’은 150여 년 전 끝났지만 미국은 정치적으로 또 다시 내전 상태에 돌입해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런 갈등을 해소하거나 완화시킬만한 뾰족한 처방이 없다는 사실이다. 병증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단순히 정치경제적 이슈를 둘러싼 이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유권자의 당파적 정체성은 인종적, 종교적, 성적, 문화적 정체성과 함께 결합되면서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의 형태로 고착돼 왔다.

‘정서적 양극화’의 해소가 쉽지 않은 것은 이것이 뇌리에 깊숙이 고착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지지하는 정당 혹은 후보가 패하면 그것은 곧 자신이 ‘루저’가 된 것 같은 열패감과 분노로 연결된다. 그러면서 상대에 대한 분노 게이지는 높아진다.

지난 2020년 대선이 끝난 후 미국사회의 분열과 관련한 많은 진단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 학계의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미국정치가 ‘석회화’(calcification)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석회화’는 칼슘이 과도하게 침착돼 몸의 조직이나 기관이 돌처럼 단단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신체의 ‘석회화’처럼 미국정치가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정치학자들은 1952년 미국 유권자들 가운데 민주·공화 양당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50%였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가진 유권자가 90%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든다. 정치적 의식이 ‘석회화’되지 않은 유권자들은 무조건 자기 당에 표를 던지는 ‘묻지마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인들의 경제적 형편과 정치적 견해에 차이가 크지 않아 ‘대압착(Great Compression)시대‘라 불렸던 1960~70년 대 미국에서는 남부 주들에서 민주당이 약진하거나 동부와 서부 주들에서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일은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들다. 1980년대 이후 정치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손을 맞잡은 채 춤추기 시작하면서 정치의 ’석회화‘는 미국을 기능부전 상태로 빠뜨리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전혀 없는 것인가. 석회화된 정치를 녹여낼 만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지닌 비범한 정치인이 등장한다면 바람직하겠지만 그런 기대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현실적으로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유권자들밖에 없다. 일부 지식인들과 학계를 중심으로 갈라진 미국의 봉합을 위한 다양한 대화노력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은 성과를 체감하기 힘들다. 오는 2024년 대선은 점차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매치로 굳어지는 형국이다. 그럴 경우 미국정치는 ‘석회화’의 단계를 넘어 ‘암석화’의 단계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20세기의 뛰어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언젠가 “후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믿고 싶은 것보다 무엇이 사실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라.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현명하고 증오는 어리석다는 것을 명심하라.” 마치 반지성주의와 증오가 판치는 오늘의 정치를 내다본 선지자의 예언처럼 들린다.         

[조윤성의 하프타임] '석회화'된 정치
조윤성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켐프 주지사, 아시안 커뮤니티에 음력설 선포문
켐프 주지사, 아시안 커뮤니티에 음력설 선포문

홍수정 의원 결의문 발의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15일 주청사 주지사 사무실에서 아시안커뮤니티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는 29일로 다가온 음력설(Lunar New Year

극우 세력 놀이터로 변질된 한인회관
극우 세력 놀이터로 변질된 한인회관

한인회칙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극우인사 정치 집회 장소로 전락  동포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건립된 애틀랜타 한인회관이 극우 인사들의 단골 집회장소로 변질되면서 한인사회의 우려가

애틀랜타, 강간범죄 증가...살인범죄는 감소
애틀랜타, 강간범죄 증가...살인범죄는 감소

대부분 다툼 커져 살인으로 이어져취업 프로젝트, 범죄율 감소에 한몫 애틀랜타내 살인범죄율이 2023년 대비 2024년 감소했다. 다린 쉬어바움 애틀랜타 경찰청장에 따르면, 강간범죄

유니온시티, 급성장 도시 전국 네번째
유니온시티, 급성장 도시 전국 네번째

고뱅킹레이트…인구 8년간 30% ↑5년간 신규일자리 1만4천여개  풀턴 카운티 유니온 시티가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외도시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최근 금융전문 온라인 사

“틱톡, 19일부터 미국서 기존 이용자 서비스도 완전 중단”
“틱톡, 19일부터 미국서 기존 이용자 서비스도 완전 중단”

미국 내에서 '틱톡 금지법'이 발효되는 19일부터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미국 내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할 계획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15일 보도했다.소식통은 연방

애틀랜타 국립 축구훈련센터 공사 ’착착’
애틀랜타 국립 축구훈련센터 공사 ’착착’

올 봄 개장 목표 막바지 공사 관련 인원 160여명 ATL 이주 내년 북중미 축구 월드컵을 앞두고 올해 봄 개장을 목표로 애틀랜타에 건설 중인 아서 M 불랭크 국립 축구훈련센터 공

공공주택서 사고나면 누구 책임?
공공주택서 사고나면 누구 책임?

주택관리기관 면책 여부 논쟁1,2심은 손해배상 소송 기각 주대법,하급심 판결 깨고 심리  조지아 대법원이 공공주택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 해당 지역정부 주택관리기관에게 과실책임 면

트랜스젠더 차별 인정∙∙∙규제는 찬성
트랜스젠더 차별 인정∙∙∙규제는 찬성

▪AJC 조지아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 트랜스젠더에 이중적 태도절반 “총격사건 피해” 우려 학교안전대책 “금속탐지기” 이번주 회기를 시작한 조지아 주의회의 주요 쟁점은 단연 트랜스젠

왈렉, 주 법무장관에 명예고문 임명장 수여
왈렉, 주 법무장관에 명예고문 임명장 수여

14일, 법무부 장관실에서 수여식 진행아시안 커뮤니티 안전 강화에 앞장서 왈렉(세계아시안사법기관자문위원회, 회장 민정기)이 지난 14일 조지아주 법무부 장관실에서 크리스 카 법무장

2025 조지아 헬스 파이어니어 장학 프로그램 접수
2025 조지아 헬스 파이어니어 장학 프로그램 접수

헬스케어 관련 전공 대학생 지원1인당 500불 장학금 후원 예정 핏인모션 물리치료 재활병원과 프리마 성형외과 센터 등 한인 병원과 사업체에서 후원하는 2025 조지아 헬스 파이어니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