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척수 근육 위축증 장애인 지켜…'졸업생 대우' 받아
비슷한 사례 간간이 소개…장애인에 대한 美 사회 인식 단면
내일(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을 전후해 열리는 여러 행사와, 보도되는 다양한 뉴스를 통해 잠시 잊고 지냈던 주변의 장애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미국에는 장애인의 날은 별도로 없다. 그렇다고 장애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90년 제정한 장애인법을 통해 미국에서 장애인은 고용에서 차별받지 않고, 모든 공공서비스와 편의시설 등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는다.
미국에서는 어린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일상화돼 있다.
이들이 음식점이나 공공시설을 들어갈 때면 앞서가던 사람이 문을 열어주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학생들을 태운 스쿨버스가 도로에 정차하면 뒤에 있는 차량은 물론, 앞뒤 좌우에 있는 모든 차량이 멈춘다. 스쿨버스가 출발해야 비로소 움직인다.
특히 최근 우연히 보게 된 미국의 한 고등학교 졸업 앨범은 놀라웠다.
5년 전인 2018년 미 몬테비스타 고교 졸업 앨범에는 한 장애인 안내견이 약 600명의 졸업생과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몬테비스타고는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댄빌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다.
이 안내견의 이름은 '레이크'(Lake). 앨범에는 '맥헤일'(Mchale)이라는 성(姓)도 붙여졌다. 레이크는 다른 학생들처럼 턱시도를 입고 앨범 한 공간을 차지했다. 마치 '진짜 학생'처럼.
레이크는 장애인을 도와주는 안내견으로 잘 알려진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으로, 이 학교 학생이었던 대니얼 맥헤일(사진 왼쪽)의 안내견이었다고 한다.
대니얼은 어릴 때부터 척수 근육 위축증을 앓은 지체 장애인이었다.
영국의 유명한 천재 물리학자였던 스티븐 호킹처럼 대니얼은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손만 약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다.
몸이 불편했지만 그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 가지 않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이 고등학교에서 4년 전 과정을 마쳤다.
대니얼과 같은 수업을 들었던 한 졸업생은 "대니얼 옆에는 언제나 레이크가 있었다"며 "학교에서도 어딜 가든 줄곧 그의 옆을 지켰다"고 돌아봤다.
레이크는 수업 시간에는 물론, 대니얼이 수업을 듣기 위해 다른 반으로 이동할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그를 안내했다.
대니얼과 함께 4년간 고등학교를 보내며 레이크도 모두의 친구가 됐다.
그리고 턱시도를 입고 '졸업생' 앨범에 이름을 올렸다. '진짜 학생'은 아니었지만,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학교로부터 '졸업생'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미국에서는 레이크와 같은 사례가 간혹 있었다. 2016년에는 루이지애나에 있는 한 중학교 졸업 앨범에 '프레슬리'라는 안내견이 실려 화제가 됐고, 이듬해에는 버지니아주 한 고등학교 앨범에 '알파'라는 안내견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알파는 주인인 앤드류가 매일 수시로 혈당을 검사하고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소아 당뇨'를 앓고 있었다. 알파는 24시간 함께하며 앤드류의 혈당이 급격히 오르거나 내리면 이를 신속히 감지해 위험을 알려줬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졸업 앨범에 안내견이 등장한 것이 '뉴스'가 될 정도로 흔한 일은 아니지만, 친구들에게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니얼의 한 동창은 "레이크가 졸업 앨범에 있다는 사실이 낯설거나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며 "그는 대니얼 가족이었고, 4년간 수업도 들었다"고 말했다.
또 "대니얼은 몸이 불편했을 뿐, 똑같은 우리의 친구였다"고 돌아봤다.
몸이 불편한 이들이 일반 학교를 졸업한 것도 놀랍지만, 이들 안내견을 졸업 앨범에까지 올린 것은 더욱 놀라울 뿐이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시각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이미 5∼7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안내견이 실린 졸업 앨범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올해 장애인의 날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