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만 명 교육·연구목적 시신 기증
장기와 달리 사고파는 규제 없어
스티브 핸슨은 항상 장기 기증자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가 2012년 간경화로 사망했을 때 의사들은 그의 장기가 이식이 가능할 만큼 건강하지 않다고 했다. 당시 호스피스 직원들은 전신 기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아내 질 핸슨은 23일(현지시간) 미국 CBS방송 인터뷰에서 “남편의 시신이 어떤 의료시설에 전달돼 그곳에서 알코올 중독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재가 될 걸로 상상했다”고 말했다. 의대생이나 연구자들이 그의 시신으로 의학을 발전시키고 다른 사람의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핸슨의 시신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생물자원센터로 보내졌고, 센터 설립자 스티븐 고어는 이 시신을 국방부에 팔았다. 남편 핸슨의 시신은 군용 험비 모의 폭발 사고에서 충돌 테스트용 ‘더미(인체모형)’로 사용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 핸슨은 충격에 빠졌다. 그는 “이렇게 될 거라고 알았더라면 절대 시신 기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2만 명이 의학 연구와 교육 목적으로 그들의 몸을 기증한다. 하지만 매매가 금지된 장기와 달리 시신은 이익을 위해 사고팔 수가 있다. 연방정부가 규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이 문제를 조사해온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관 폴 마이카 존슨은 기증된 시신을 사고파는 것을 ‘거대한 회색의 암시장’이라고 불렀다. 기증자 소개 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다 징역형을 살았던 필립 귀엣 주니어는 CBS 인터뷰에서 “의학 경험도 없고, 장의사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시신 기증 프로그램을 열 수 있었다. 인체를 소유하고, 절단하고, 어떤 종류의 허가나 감독도 없이 전국에 보낼 수 있었다. 카트에서 핫도그를 파는 일보다 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쉽다”라고 설명했다.
2017년 로이터통신 보도로 미국에서는 ‘시신 브로커’가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장례비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화장을 해주겠다며 접근해 시신을 기증받은 뒤 사체 일부 부위를 다른 곳에 판매해온 민간 업체들이 적발되면서다.
로이터는 2011년부터 5년간 개인 브로커가 버지니아 등 4개 주에서만 최소 5만 구의 시신 기증을 받고 18만2,000개 이상의 신체 부위를 배포했다고 보도했다. 브로커들은 기증된 시신을 3,000~1만 달러를 받고 판매했고, 일부 브로커는 ‘다리가 있는 몸통 3,575달러, 머리 500달러, 척추 300달러’ 식으로 가격을 매겨 팔아 충격을 줬다.
시신의 신체 부위를 함부로 훼손해 이를 판매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규제는 쉽지 않다. 대규모 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2004년 연방 보건위원회가 정부에 시신 기증 산업 규제를 요구했지만 실패했다. 지난해 9월 미 상원에서 시신 기증 절차에 연방 규제를 부과하는 시신 브로커 법안이 발의됐지만 표결은 예정돼 있지 않다고 CBS는 전했다.
FBI 수사관 존슨은 “시신 전체를 기증하는 산업은 과학 발전을 위해 필요하나 이 산업이 대중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