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대형 중심 규제가 소형은행 위기 놓쳐”
글로벌 금융 불안의 진원지가 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을 두고 금융당국의 ‘감시망 부재’가 자초한 결과란 비판이 거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당국이 대형은행 건전성을 최우선 과제로 다루면서, 정작 그사이 급성장한 중·소형은행의 위험 신호는 놓쳤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현재 줄도산한 은행들 역시 이미 4, 5년 전 위기 조짐을 보였던 만큼 당국의 책임론이 재점화하는 형국이다.
■SVB 파산… “중소 은행 느슨한 규제가 위기 자초”
20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융당국이 몇년 새 몸집을 불려 온 중소 은행들의 위기 가능성을 간과한 결과가 이번 참사를 불렀다고 보도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대마불사(큰 회사일수록 정부 보호로 망하지 않는 현상)’로 통하는 소수 대형은행의 건전성 관리에만 집중하면서 이번 파산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WSJ는 “소규모 기업도 대형 기업이 실패하는 것만큼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SVB 사태가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특히 중소 은행들에 대한 느슨한 규제를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2010년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해 은행 규제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은행이 비상 상황에서도 건전성을 유지하는가를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 제도가 도입됐다. 2018년 미 의회는 당국의 점검을 받아야 하는 은행의 자산 규모 기준을 500억 달러에서 2,500억 달러로 대폭 끌어올렸다.
SVB의 자산 규모는 2017년 말 기준 512억 달러로 감독 대상에서 제외됐고, 지난해까지 자산은 4배 수준(2,200억 달러)으로 불었다. WSJ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19년에도 SVB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이렇다 할 조치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 “건전성 테스트서도 제외”… 당국 SVB ‘분할 매각’ 결정
은행 관계자들도 느슨한 규제가 소규모 은행의 부실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SVB의 경우 채권 투자 비중이 과도해 손실 위기를 키웠는데, 엄격한 스트레스 테스트 등을 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지온스 뱅코퍼레이션의 제임스 애벗 대변인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고, 다양한 고객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은행의 안정성을 보장해 온 게 사실”이라며 “어떤 유형의 자산이나 부채가 극도로 집중된 은행이 시스템을 통한 파급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금융당국은 SVB를 사업 부문별로 분할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20일 SVB 파산관재인인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SVB를 ‘예금 사업부’와 ‘자산관리 사업부’로 나눠 팔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SVB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미 중소은행 퍼스트시티즌스 뱅크셰어스도 입찰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