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 자산가격 하락 → 뱅크런 악순환
‘제2 SVB’ 지목 은행 주가 폭락세 불안
지난 10일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은행인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의 주가는 이날 하루 15% 하락했다. 제2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될 수 있다고 지목 받으면서다. 모기지 대출 사업을 중심으로 고성장한 퍼스트 리퍼블릭의 포트폴리오가 부동산에 치우쳐 있어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퍼스트 리퍼블릭은 이날 “어떤 단일 분야도 전체 예금원의 9%를 넘기지 않는다”며 “테크 분야 예금주의 예금액은 전체의 4%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규모 2,090억달러로 미국 16위 은행이었던 SVB의 파산 이후 금융권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대형 은행까지 붕괴하는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미지수지만 지역 중소 은행을 중심으로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11일 블룸버그 통신과 월스트릿저널(WSJ) 등에 따르면 퍼스트 리퍼블릭을 비롯해 팩웨스트뱅코프·시그니처 뱅크 등이 위기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지목됐다. 이중 시크니처 뱅크는 지난 12일 뉴욕주 금융당국에 의해 폐쇄됐다. 모두 SVB와 부동산이나 암호화폐, 기술 기업 등 특정 분야에 고객 층이 집중되거나 미실현 손실이 큰 곳이다.
팩웨스트의 경우 부동산대출이 전체 대출 포트폴리오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그니처 뱅크는 암호화폐 업체가 주 고객이다. 모두 금리에 예민한 분야기도 하다. 모닝스타의 에릭 콤프턴은 “SVB는 유동성과 미실현 손실 점수에서 우리가 다루는 여러 은행 중에서도 특히 낮았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사안이 점점 진화 중이며 금융권의 자금 압력 변화 양상을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이 우려하는 부분도 이 같은 불확실성이다. WSJ에 따르면 SVB는 문제가 불거지기 전날인 8일까지만 하더라도 현금 잔액이 플러스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이튿날 잔액은 -10억 달러로 줄었다. 9일에만 전체 예금의 4분의 1 규모인 420억달러의 인출 요청이 발생하면서다.
캘리포니아주 당국이 10일 아침 SVB파이낸셜그룹의 폐쇄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고금리는 은행의 손실 우려를 키우는 근본 원인이다. PGIM의 선임포트폴리오매니저 마이클 콜린스는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뭔가가 부서질 때까지 계속 움직인다”며 “현재로서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리스크보다 뭔가 붕괴될 위험이 더 크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불안감에 금융시장도 흔들렸다. 10일 미국 2년물 국채의 경우 전날 4.9%였던 수익률이 31bp(1bp=0.01%포인트) 급락해 4.59%에 마감했다. 2008년 9월 29일 이후 최대 일일 수익률 하락이다. WSJ에 따르면 SVB 사태가 발생한 이틀간 미국의 시가총액은 1,000억달러 이상 증발했다.
다만 시스템 위기까지는 가지 않는 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부 장관은 “이번 사태는 분명히 실리콘밸리와 벤처 부문 특유의 동력에서 비롯된 사안”이라며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다만 바클레이스의 이코노미스트팀은 “SVB 사태는 은행 시스템 내에서 더 광범위한 위기의 위험을 제기한다”며 “실제로 다른 기관의 자본 손실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SVB의 인수전에도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가 디지털 은행이 되기 위해 SVB를 인수해야 한다’는 이용자 트윗에 “그 아이디어에 열려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WSJ는 여러 매체의 보도를 인용해 헤지펀드인 오크트리와 투자은행인 제프리스가 무보험 예금 1달러당 각각 60센트와 70센트에 인수 제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