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파월 브루킹스 연설 분석과 전망
“나는 여전히 경제가 연착륙(soft landing)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말 그렇게 믿습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행보의 결과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착륙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근원(core) 상품 물가와 집값 하락이 가시화하자 실업률을 크게 악화시키지 않고도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30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행사 연설에서 “미국 경제가 소프트랜딩할 것이라는 전망은 아주 타당하다”며 “우리의 목표는 이를 달성하는 것이고 여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이날 발언에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예고했던 과거 발언과 비교해 낙관적인 시각이 묻어난다. 앞서 파월 의장은 8월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미팅) 당시 “가계와 기업에 어느 정도 고통이 따를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감스러운 비용”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학계와 시장 등에서는 연준이 사실상 경기 침체를 용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파월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몇 개월 내 또는 내년 후반에 이르러 주요 인플레이션이 완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근원 상품 물가와 관련, “인플레이션이 종식됐다고 선언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상품 물가는 향후 몇 개월 동안 전체 인플레이션에 하향 압력을 가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주택 서비스 인플레이션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신규 임대 인플레이션이 계속 하락하는 한 내년 후반에는 하락하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근원 서비스 물가의 경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파월 의장은 “서비스 인플레이션에 특히 중요한 노동시장은 잠정적인 개선 징후만을 보이고 있고 임금 상승도 가파르다”고 분석했다. 실업률이 연준이 원하는 만큼 오르고 있지 않다는 뜻이지만 이는 돌려 말하면 실업률이 치솟지 않더라도 상품과 주택 서비스 가격 하락이 가시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파월 의장은 이와 관련해 “연착륙으로 가는 길은 꽤 명확하다”면서 “상품과 주택 시장의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노동시장은 개선되지만 (실업률이 치솟는 등) 침체로 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금리를 더 높이 올리고 더 오래 유지하면서 연착륙의 길이 좁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역사적으로 보면 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결과일 수 있지만 지금의 여건은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며 소프트랜딩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드러냈다.
거시지표에서도 침체 신호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날 연방 상무부가 발표한 3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잠정치는 2.9%로 앞서 발표한 속보치 2.6%에서 상향 조정됐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개인 소비지출이 속보치보다 0.3%포인트 상향된 1.7%로 집계됐다.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의 경제 전망 모델인 GDP나우에 따르면 4분기 미국 GDP 전망치는 4.3%에 이른다.
다만 이날 연준이 발간한 경기 동향 보고서(베이지북)는 현 시점 미국 경제에 대해 급격한 하락세는 드러나지 않는 반면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지북은 12개 각 지역 연은의 관할 구역 내 경기 흐름을 평가한 보고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연준은 베이지북에서 5개 관할 구역에서 경제활동이 약간 증가한 반면 나머지 7개 구역에서는 경제활동이 직전과 같은 수준 또는 소폭 감소했으며 다수 기업은 연말 경제 전망에 관해 “불확실성이 증대했다” “비관론이 커졌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연방 의회예산국(CBO)이 발표한 내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도 불확실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CBO는 이날 내년 GDP 범위로 -2.0~1.8%를 제시했다. 경기 침체부터 연착륙 시나리오까지 모두 가능한 셈이다. 실업률 전망치도 3.8~6.4%로 편차가 크다.
파월 의장은 “나와 내 동료들은 몇 주라도 과잉 긴축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너무 이른 시점에 금리를 인하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며 “(경제 상황에) 정확히 걸맞은 금리 수준을 찾아내려 하고 있고 우리가 속도 조절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