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200만 배럴 감산… 내년까지 감산 기조 유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 규모의 대규모 감산에 나서기로 한 지난 5일 결정이 원자재 시장은 물론 국제 정세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배럴당 80달러대로 안정됐던 국제 유가가 다시 치솟으며 시장에서는 유가발 고물가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고 오랜 동맹인 미국과 사우디의 균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잡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은 감산 결정이 ‘근시안적’이고 러시아에 이득을 주는 행위라고 OPEC+와 사우디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OPEC+의 대규모 감산 전망이 나오면서 급등하기 시작한 국제 유가는 이날 약 3주 만에 최고로 튀어 올랐다. 북해산브렌트유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94달러에 육박했고 6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도 9월14일 이후 최고치인 배럴당 88.4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OPEC+는 이날 개최한 월례 장관급회의에서 원유 생산을 하루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감산 결정을 내렸다. 이뿐 아니라 사우디 등 23개 OPEC+ 회원국들은 ‘시장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내년 말까지 감산 기조를 유지하기로 합의해 적어도 1년 이상 원유 생산을 늘리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OPEC+ 측이 밝힌 감산 이유는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다. 그러나 외신들은 산유국들이 실제로는 원유 판매 수입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의에 참석한 티미프레 실바 나이지리아 석유자원장관은 “(OPEC+) 회원국들은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선으로 유지되는 것을 원한다. 그 아래로 떨어지면 자국 경제가 나빠질 수 있다고 본다”고 블룸버그통신에 털어놓았다.
시장에서는 대규모 원유 감산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주범’인 고유가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이었다. UBS와 RBC·SPI에셋매니지먼트 등 금융사들은 브렌트유 가격이 연내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넘길 것으로 예상했고, 골드만삭스는 브렌트유의 올 4분기 전망치를 배럴당 110달러로 올려 잡았다.
고유가발 인플레이션이 결국 글로벌 경기를 침체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덴마크 삭소은행의 올레 한센 상품전략책임자는 “물가를 잡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기간을 늘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OPEC+ 회원국들은 유가 수입 감소를 걱정해 감산을 지지했지만 이 결정이 세계 경기 둔화라는 유탄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다.
산유국들의 증산을 유도하기 위해 사우디를 직접 방문하며 공을 들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규모 감산 소식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11월 중간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유가 상승은 민주당에 대형 악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OPEC+의 근시안적인 감산 결정에 실망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OPEC+가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는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고갈시키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며 대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는 와중에 OPEC+가 러시아의 원유 판매 수익을 늘리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바이든 정부가 5월 연방 상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한 ‘석유생산수출카르텔금지(NOPEC)’ 법안을 대응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 소비자가 산유국 기업을 상대로 가격 담합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한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민주당 소속 로 카나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가 (감산으로) 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러시아를 돕는다면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바이든 대통령이 앞서 인권 기조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사우디를 직접 방문한 것이 무위로 돌아갔다며 바이든의 외교 실패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