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질서 흔드는 ‘메이드 인 USA’
중국 첨단 바이오 시설 의존도 높아지자
미국은 생산시설 자원 2.8조 쏟아부어
9월 1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국가 바이오 기술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National Biotechnology and Biomanufacturing Initiative, 이하 바이오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틀 뒤인 9월 14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알론드라 넬슨 과학기술정책실(OSTP) 실장 등 백악관 고위 인사들은‘생명공학·바이오 제조’ 회의를 다시 소집했다. 이날 회의에는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 장관과 캐슬린 힉스 국방차관, 주얼 브로노 농무차관 등 관련 부처 고위 당국자도 총출동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회의에서 미국은 과거 생명공학 분야의 해외 생산 의존이 증가하면서 중국의 첨단 바이오 제조 기반시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바이오 산업의 미국 내 생산 지원을 위해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앞서 8월 10일과 8월 16일 자국 반도체 및 전기차·배터리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을 대통령 서명을 통해 발효시킨 바 있다. 이로써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이른바 BBC(Bio·Battery·Chip) 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1년 전인 지난해 초에 단행한 결정에서 비롯됐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초 출범과 동시에 핵심 기술과 전략 산업별 공급망 리스크를 검토하고 지난해 6월에는 100일 공급망 검토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핵심 광물 등 4개 분야를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위해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의 BBC에 대한 행정명령 서명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치밀하게 준비된 결과물인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BBC 산업에 대한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게 된 실질적인 배경은 중국의 ‘맹렬한 추격’과 미국이 중국에 따라 잡힐 수 있다는 일종의 ‘두려움’이다. 미국의 기술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기 위한 조치로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핵심 광물까지 포함시킨 것은 첨단 산업의 원료 자원도 사수하겠다는 미국 행정부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미 기술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위기의식에 빠진 미국
BBC 산업은 공통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공급망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단계의 공급망이 특정 국가, 특히 중국에 의해 장악돼 있는 공통점이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미국의 제약사들은 미국 내에서 연구개발된 의약품을 생산 시설을 해외에 두고 위탁 생산했다. 바이오 제조 역량의 오프쇼어링(생산 시설 해외 이전)은 미국 바이오 제조 기반의 약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바이오 기술 솔루션 및 제품을 위해 투자를 하는 동안 미국은 외국의 재료와 바이오 생산에 너무 크게 의존해 치명적인 공급망 취약성의 문제점을 안게 됐다.
중국은 제조 역량 강화에서 시작해 이제는 바이오 기술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 학자들의 바이오 기술 분야 과학기술 논문 숫자는 매년 20%씩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양적인 논문 생산 성과는 해당 분야에서 2020년 독일과 영국을 이미 추월한 데 이어 근소한 차이로 미국을 바짝 쫓아가고 있다. 바이오 기술 특허 등록 면에서 중국의 세계 점유율이 2000년 1%에서 2019년 28%로 급증하는 사이 미국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45%에서 27%로 급감했다.
비슷한 상황이 반도체 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1990년 미국의 전 세계 반도체 제조 비중은 37%였으나 현재는 12%까지 떨어졌다. 반면 중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은 15%까지 늘어났다. 10년 안에 중국의 제조 비중은 25%까지 증가할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 강화는 반도체 설계와 초격차 기술 분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개발에 돌입한 것은 2007년이었다. 전기차 개발에 돌입한 지 1년 만인 2008년 중국은 2100대의 전기차를 생산했다. 2013년에는 EU와 미국이 각각 점유율 23%와 48%로 세계 전기차 시장을 지배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미국과 유럽은 중국에 비해 전기차 보급이 크게 뒤처지게 됐다. 중국의 전기차 생산은 2015년 33만 대, 2017년에는 100만 대를 넘어섰다. 2018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200만 대를 넘어선 가운데 약 120만 대가 중국의 국산 전기차였다. 2021년 말 기준 전 세계에서 신규 판매된 전기차 660만 대 가운데 중국의 전기차는 340만 대였다. 미국은 40만 대에 불과했다. 중국의 전체 승용차 시장 규모가 2500만 대이고 미국이 1500만 대임을 감안할 때 전기차 비중은 중국이 15%, 미국이 4%인 것이다.
기가 팩토리로 불리는 배터리 셀 제조 공장은 중국에 93개가 있는 반면 미국은 5개에 불과하다. 전 세계 배터리 셀 제조에서 중국 장악률은 73%에 달한다. 채굴된 배터리 광물은 바로 배터리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가공과 소재 부품화를 거치게 된다. 배터리에 쓰이기 위해서는 채굴된 리튬 원료를 가공해 수산화리튬·탄산리튬 등으로 가공해야 하는데 리튬 화합물의 중국 장악률은 80%이며 흑연 화합물은 훨씬 더 높다.
미국으로 쏠리는 BBC 분야 설비 투자…전 세계 설비투자 블랙홀로 부상하나
미국 정부의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 지원 법안 발효로 미국의 신규 제조 시설에 세계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흘러 들어가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의 미국 내 배터리 제조 공장 투자만 45조 원에 달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 통과를 계기로 배터리 머티리얼 개발과 가공, 전구체, 양극재 중심의 미국 내 투자 2차 물결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일본과 유럽의 배터리 머티리얼 기업들이 미국과 캐나다·호주에 몰려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양극재 기업들이 미국·캐나다·호주 등에 투자하기 위한 구체적 협상을 인플레이션감축법 서명 이전부터 상당 기간 진행해오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바이오 이니셔티브는 ▲미국 내 바이오 제조 역량 강화 ▲바이오 기반 제품의 시장 확대 ▲큰 도전 과제에 대한 연구개발 확대 ▲양질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 향상 ▲다양한 숙련된 인력 양성 ▲바이오 제품 규제 간소화 ▲미국 바이오기술 생태계 보호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반도체나 배터리 분야보다는 아직 뒤처진 행정명령 수준으로 행정명령 이행 평가 보고서를 180일 이내에 대통령에게 제출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상태다. 세부적인 계획은 180일 이내에 발표될 평가보고서, 그리고 1년 이내에 발표될 보고서 등을 통해 추가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김연규 교수는
한양대 국제학부·글로벌기후환경학과 교수로 산업통상자원부 지원 글로벌에너지 정책전문가 사업단장이다. 4월에는 ‘가난한 미국 부유한 중국’이라는 책도 발간했다. 자원 안보 핵심 광물 공급망이 김 교수의 주된 연구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