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정책·높은 세금에 공급이 수요 못미쳐
한국에서는 ‘생계형 연료’인 경우(디젤)가 세금이 많이 붙는 휘발유(개솔린)보다 저렴한 것은 오래된 현상이지만 미국에서 통상 디젤이 개솔린보다 더 높은 가격을 유지해왔다. 한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디젤와 개솔린 가격이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의 여파로 유럽을 중심으로 디젤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한국내 경유 가격은 지난 5월 휘발유를 추월했다. 한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웃돈 것은 2008년 6원 이후 약 14년 만이다.
미국에서는 디젤 가격과 개솔린 가격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양상이다. 현재 미국에서 디젤는 개솔린보다 갤런당 약 1달러 이상이 더 비싸게 형성돼있다.
유가정보업체 OPIS에 따르면 지난달 말 미 전국 평균 디젤 가격은 갤런당 5.8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다소 하락추세로 전환, 25일 기준 갤런당 5.41달러를 기록했다. 같은날 개솔린는 4.36달러였다.
미국에서 디젤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말고도 정제용량 감소,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에너지 수요 상승 등과 맞물리며 이미 많이 오른 상태였다. CNN 비즈니스는 그간 미국에서 디젤이 오랫동안 개솔린보다 비쌌던 이유를 정리했다.
첫 번째는 친환경 정책으로 생산원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2006년 연방 환경보호국(EPA)은 대기 중으로 유입된 유황 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토대로 디젤의 유황 함유량을 줄이는 규정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4년부터 미국에서 생산되고 판매되는 모든 디젤은 황 함유량이 15ppm(100만분의1)을 넘지 않는 초저유황디젤(ULSD)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적용했다. 이러한 규정 덕분에 유해한 배출량을 최소 90% 줄였다고 EPA는 분석했다. 다만 황 함유량 감소로 친환경성은 개선됐지만 연비가 악화하고 생산원가가 올라가면서 디젤의 최종 가격이 오르는 결과는 불가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번째는 연방·주 정부에서 부과하는 세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개솔린와 디젤의 연방 유류세는 각각 갤런당 18.4센트, 24.4센트로 1993년 이래 그대로 유지돼왔다. 연방 유류세를 걷으면 고속도로 건설·유지보수 재원인 고속도로신탁기금(HTF)으로 들어간다.
연방세 말고도 주정부 차원에서 부과하는 추가 유류세도 디젤이 더 높다. 미국석유협회(API)에 따르면 디젤와 개솔린의 주 유류세 차이는 1.55센트, 연방세까지 고려하면 디젤가 평균적으로 7.55센트 더 높다. 디젤 유류세가 더 높은 이유는 디젤 엔진으로 굴러가는 화물차와 버스 등 주요 교통수단이 무게가 훨씬 더 나가고 평균 자동차보다 도로에 가하는 손상도가 더 높기 때문이라고 CNN은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디젤의 높은 가격에는 높은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시장의 기본 원리도 영향을 미친다. 공급시장 측면에서 보면 디젤는 개솔린보다 생산역량이 더 제한적이다. 연방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정제되는 원유 1배럴당 개솔린는 19~20갤런이 생산되는 반면 디젤로 전환되면 11~12갤런으로 떨어진다.
수요 시장에서 디젤와 그 자매품은 트럭과 기차, 버스, 산업기계, 건설·농업장비, 선박, 군용차량 등 산업 현장에서 전방위적으로 쓰이고 국내외 운송업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는다. 기본적으로 수요처가 많은 상황에서 공급량은 제한되면서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