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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없이 전쟁은 좀…”베트남전 참전 남북 군인의 공통점

한국뉴스 | 기획·특집 | 2022-04-22 11:21:23

베트남전 참전 남북 군인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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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식량의 역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제 곧 2개월째로 접어든다. 전세는 이미 알려진 그대로이다. 러시아는 쉬운 침공을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을 직면하고 있는 한편 세계적인 제재를 감당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러시아의 오판이 여러 부문에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매체는 앞다퉈 보급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원활하지 못한 보급이 러시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러시아군이 제대로 먹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군은 위(胃)로 전진한다’라는 말이 있듯 잘 먹지 못하는 병력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 아직까지 쓰이는 병조림 및 통조림 또한 군수 식량의 원활한 보급을 위해 개발되었듯, 전쟁은 식료품 관련 기술을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빠른 평화적 해결을 기원하며 현대 전투식량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미군의 전투식량: 소고기와 콩에서 MRE의 탄생까지

통조림과 병조림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개발되었지만, 이후 전투식량의 역사는 미국이 꽉 잡고 있다. 아무래도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등을 통해 세계 경찰로서 입지를 굳힌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본격적으로 완전 조리된 식품을 장병들에게 보급해 온 바, 미 국방부에서는 단순히 영양의 균형이 잡힌 식단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적합한 전투식량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양한 환경에서 차출된 병력이 때로 아주 긴 기간 동안 작전에 투입된 상황에서도 먹을 만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어야만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은 위로 전진한다는 문구를 인용했듯 식량이 다양하면 할수록 모든 장병이 잘 먹고 좋은 영양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분을 함유한 음식으로 이루어진 통조림은 보급의 차원에서도 별도의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거나, 투입하더라도 무거워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벼운 대안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1963년, 미 국방부에서는 ‘즉석 휴대 식량(MRE)’의 개발에 착수했다. MRE는 좀 더 현대적인 식품 가공 및 포장 기술을 활용해 이전 세대 전투식량인 MCI(개인 전투식량)의 대체를 목표로 삼았다. 3년 뒤인 1966년, 첫 결실인 LRP가 등장했다. 탈수 식품을 방수 캔버스천 주머니에 담은 이 배급식량은 단점이 많았다. 기존의 통조림 식량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보존성이 떨어져 작전에 효율적으로 투입되지 못했다.

초기 MRE의 개발은 압둘 라만 박사에 의해 동결 건조 및 탈수 식품의 활용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곧 비효율적으로 밝혀졌다. 가볍고 보존성은 좋을지 몰라도 물을 반드시 보급해야만 하며 포장을 뜯어 바로 먹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네이틱 군수 연구소의 라우노 A. 램피 박사가 다른 방향에서 연구에 접근했다. 유통기한이 3~10년에 이르는 완전 조리 음식을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수송 및 보급도 훨씬 원활할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도 포장만 뜯어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효율적일 수 없었다. 이렇게 개발된 MRE는 1981년 특별 보급품으로 편성되기 시작했고, 1986년 12가지 주요리로 구성된 일반 보급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전투식량은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1990년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도 전투식량을 데울 수 있는 발열 봉투가 개발되었다.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며 메뉴가 조금씩 다양해졌으니 1996년에는 주요리가 16가지(채식 메뉴 포함), 1997년과 1998년에는 각각 20가지와 24가지로 늘었다. 현재 MRE는 24가지의 주요리에 150가지 이상의 곁들이로 구성되어 있다. 각 끼니는 1,200칼로리이며 최대 21일 연속으로 먹을 수 있고 유통기한은 최소 3년이다. 

 

■ 한국군의 전투식량: K레이션의 탄생과 김치의 통조림화

국군이 주먹밥 아닌 전투식량을 처음으로 지급받은 시기는 베트남전이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남베트남과 미군으로부터 기본 식량을 보급받았다. 쌀, 소금, 설탕, 식용유, 차는 남베트남으로부터, 전투식량은 미군으로부터 받는 여건이었다. 이 이원 보급 시스템을 통해 생존 자체에 필요한 식량은 문제없이 확보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 합의 속에는 한국군의 ‘지방적 욕구’를 충족하는 식량, 즉 각종 장류나 김치 등 한국 식품의 공급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

한국군은 빠르게 적응해 찰기가 없는 월남쌀로 밥을 짓고 C-레이션으로 국이나 찌개를 끓여 끼니를 해결했지만 된장과 고추장, 김치에 대한 욕구는 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파월된 간호장교가 김치를 담가주는 희생까지 치러야만 했다. 

여담이지만 심지어 이런 문제는 북한군마저 겪었으니, 베트남전에 참전한 북한군은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이나 북베트남군이 담가 준 김치를 먹곤 했다.

베트남전은 길고 무더웠으니,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연인원 32만여 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열대성 기후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음식에 대한 보급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은 미군에게 한국 음식을 전투식량으로 제공해달라고 요구했고, 미군이 화답해 밥, 김치, 꽁치 통조림 등이 포함된 C-레이션이 보급됐다. 

당시의 증언에 의하면, 맛은 괜찮았지만 하와이의 일본인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됐다. 김치가 한국 고유의 음식인데, 일본인이 만든 것을 그것도 군인에게 먹일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채명신은 김치 등 한국식 전투식량의 개발을 국방부에 요청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대한종합식품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 각서를 통해 상공부에 종합식품공업심의위원회 등 관계 기관을 설립한 뒤 국내 50여 개 통조림 가공업체 중 시설, 기술, 경영 능력 등을 조사해 우수한 23개 업체를 후보 공장으로 선정해 설립된 회사였다. 당시 국내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설립된 통조림 생산 시설이 계속 운영되고 있었고, 광복 이후에는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등의 지원으로 통조림 제조 산업이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수준은 낮을지라도 시제품 생산은 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K레이션, 특히 김치 통조림의 개발이 원활했던 것은 아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에게 김치 통조림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군의 군납기준을 충족시켜야 했다. 더군다나 김치를 통조림으로 만드는 시도는 최초였으므로 참으로 부담스러운 기술적 과제였다. 

추진위원회는 1966년 8월 11일, 김치 통조림 시제품 열 상자를 채명신 사령관에게 보내 미국과 현지 교섭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김치 통조림에서 시뻘건 녹물이 나와 먹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조 기술의 부족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였으니 변화가 필요했다. 결국 대한종합식품의 기술부를 외부의 전문가로 대체하고 미국 및 일본의 기술자를 고문으로 초빙하는 한편 부산에 새로운 포장시설까지 설립한 끝에 1967년 3월, 김치 통조림이 최종 시험을 통과했다. 이후 정치적인 절차를 거쳐 1968년 1월부터 K레이션이 베트남의 한국군에 공식 보급됐다.

K레이션은 한국인의 기호를 고려해 K1~6까지 전부 6가지 종류로 이뤄졌다. 각 레이션은 주요 품목 11가지와 부속 품목 5개로 이뤄졌는데, 일단 주요 품목은 흰쌀밥에 김치, 멸치 파래무침, 돼지고기 조림, 쇠고기 조림, 오징어 조림, 꽁치 조림, 두부전, 콩자반, 장조림, 소시지 조림의 반찬 열 가지였다. 

한편 5가지 부속품목은 부속대, 숟가락, 판따개, 소상자, 대상자였으며 부속대는 인삼차, 가루고추장, 설탕, 소금, 껌, 담배, 휴지, 성냥으로 이뤄졌다. 공식 보급이 1968년부터 이뤄졌다고 했지만, 사실 주베크남 한국군은 이미 1967년 2월부터 위문품 형식으로 K레이션을 보급받고 있었다.

이후 한국의 전투식량도 계속 발전했다. 1980년대부터는 영양의 균형을 고려한 국내 개발형 전투식량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고추장볶음, 통조림, 건빵 등을 자체 생산해 국군 특유의 전투식량을 구성하게 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형 전투식량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 국방과학연구소의 주도 아래 현재 전투용 1형의 식량이 개발됐다. 1형은 즉각 취식형 전투식량으로 현재 군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투식량이다. 한국의 전투식량은 미군을 비롯한 서양과 비교할 때 내용물이 단순하고 주식의 부피가 크다. 쌀로 대부분의 열량을 섭취하니 야전에서 유용하다. 반면 반찬과 부식의 다양성이 적고 커피믹스나 향신료, 물티슈나 정수 알약 같은 부속물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참고문헌: 논문 ‘베트남 전쟁기 한국형 전투식량 개발 과정 고찰’, 이신재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원들이 2004년 9월, 김치 통조림 등 전투식량으로 식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원들이 2004년 9월, 김치 통조림 등 전투식량으로 식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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