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바이어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큰 기대를 품고 주택 구입에 나섰지만 주택 시장 여건이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매물 숫자는 작년과 비슷한데 집값과 모기지 이자율이 오르면서 주택 구입 여건은 더 악화된 상황이다. 올해 내 집을 마련할 계획이라면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맨다는 각오로 임해야겠다. 재정 전문 머니 매거진이 현재 주택 구입 여건이 얼마나 열악한 지 숫자로 정리해 봤다.
BOA·NAR…각종 부동산 지표
주택 구입 얼마나 힘든지 보여줘
◇ 주택 구입 능력 추락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주 집값 급등과 모기지 이자율 상승으로 주택 구입 능력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BOA는 ‘전국 부동산 중개인 협회’(NAR)가 집계하는 ‘주택 구입 능력 지수’(HAI)가 최소 25%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고 주택 가격 상승폭에 따라 더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도 내다봤다. HAI는 가구 중간 소득, 주택 중간 가격, 모기지 이자율, 모기지 페이먼트 등을 기준으로 집계한 지수로 지수가 하락할수록 주택 가격이 높아 페이먼트 부담이 치솟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1월과 올해 1월 사이 HAI는 약 15%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불과 두 달 사이 집값과 모기지 이자율이 더 오르면서 바이어의 페이먼트 부담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우울한 전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주택 가격은 약 20% 급등한 것으로 집계됐고 BOA는 올해 최소 10%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 다운페이먼트 비율 점점 낮아져
주택 가격이 오르면 모기지 대출을 받아야 하는 바이어는 더 높은 금액의 다운페이먼트를 마련해야 한다. BOA 주택 부문 애널리스트는 “다운페이먼트 금액을 기준으로 볼 때 주택 구입 여건은 역대 최악”이라며 “주택 구입 진입 장벽이 더욱 높아진 셈”이라고 경고했다. 내 집 마련에 가장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 바이어는 첫 주택 구입자와 젊은 층 바이어들이다. 부동산 업체 ‘클레버’(Clever)가 작년 12월 밀레니엄 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다운페이먼트를 마련하는 것이 주택 구입 시 가장 장애물이라는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일반적으로 주택 구입 가격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다운페이먼트로 마련하는 것이 내 집 마련의 정석처럼 여겨진다.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최소 20%를 넘어야 유리한 조건으로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20% 다운페이먼트 정석’과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NAR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첫 주택 구입자의 평균 다운페이먼트 비율은 7%로 정석처럼 여겨지는 20%에 크게 못 미쳤다. 지난해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첫 주택구입자들의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크게 하락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20%를 넘지 못할 경우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고 모기지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등 주택 구입 비용 부담이 더욱 늘어난다.
◇ 집값 상승에 페이먼트 부담 눈덩이
최근 모기지 이자율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바이어들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자율이 오르면 모기지 페이먼트를 포함한 주거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올라 기타 생활비 부담이 더욱 빠듯 해진다. NAR에 따르면 올해 1월 첫 주택구입자의 가구 소득 중 모기지 페이먼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25.6%로 조사됐다. 이 비율이 25%를 넘으면 모기지 페이먼트가 적정 이상 수준임을 의미하는데 재산세, 주택 보험료 등 기타 주거비까지 포함하면 주거비로 지출되는 비용에 많은 바이어들의 허리가 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택 구입 자격을 갖춰도 내 집을 마련하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매물이 부족해 전국 곳곳에서 극심한 구입 경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나온 지 일주일 만에 팔리는 집이 대부분이고 매물 한 채에 여러 명의 바이어가 달라붙어 주택 구입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BOA는 과열 경쟁과 매물 부족 이에 따른 집값 상승이 이어지고 있어 매물 부족 현상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현재 건축 자재와 인력 부족으로 신규 주택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기존 주택 보유자들이 집을 내놔야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는 상황이다. 그런데 주택 구입 여건 악화로 주택 보유자들은 주택 처분 대신 재융자를 통해 낮은 이자율로 갈아타는 이른바 ‘록-인’(Lock-In) 현상만 반복되고 있다.
◇ 34%
지난 2년간 주택 가격은 무려 34% 치솟았다. 2020년 3월 27만 6,225달러였던 주택 중간 가격은 올해 3월 둘째 주 36만 9,125달러로 급등했다. 사상 최대폭의 상승률이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 업체 질로우는 주택 가격 상승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내년 1월까지 약 17.3% 더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 456,000
부동산 중개 업체 레드핀은 3월 중순 주택 시장에 나온 매물의 숫자가 45만 6,000채에 불과하다고 집계했다. 현재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매물 찾기에 혈안인 바이어가 수백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매물 숫자다. 팬데믹 발생 이전인 2년 전 매물 숫자가 약 91만 1,000것과 비교할 때도 절반에 불과하다. 매물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주택 가격 상승세 역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 25일
나온 지 한 달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는 매물은 뭐가 이상이 있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매물 판매 속도가 가파르다. 레드핀에 따르면 매물 판매에 걸리는 기간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25일 집계됐다. 1월 판매된 매물의 절반에 가까운 45%는 나온 지 2주 만에 팔렸고 전체 매매 매물 중 약 35%는 불과 1주일 안에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리얼터닷컴의 조지 라티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거래가 급증하는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있지만 매물이 늘지 않아 나오자마자 팔리는 매물이 흔하다”라고 설명했다. 2년 전 주택 판매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53일이었다.
◇ 70%
1월 팔린 매물 10채 중 7채는 오퍼가 2건 이상 제출된 이른바 ‘복수 오퍼’를 받았다.(레드핀 집계). 지난 1월은 레드핀 집계 이래 오퍼 경쟁이 가장 극심한 달로 기록됐다. 2020년 4월 복수 오퍼 비율은 33%로 소수였지만 불과 2년만 거의 대부분의 매물은 복수 오퍼를 받는 과열 시장으로 바뀐 것이다. 과열 경쟁은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1월 팔린 매물의 절반에 가까운 46%는 리스팅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