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 소변을 통해 몸 밖으로 내보내는‘몸속 정수기’다. 심장이 뿜어내는 혈액의 20%(하루 1,800L)가 콩팥에서 걸러진다. 그런데 콩팥 기능이 떨어져 몸속 노폐물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고 수분ㆍ전해질 조절도 적절히 못하게 된 것을‘만성콩팥병(만성신부전)’이라고 한다. 만성콩팥병은‘추정 사구체 여과율(eGFR)’이 60mL/분/1.73㎡ 미만이고, 소변에서 단백질이 나오는 상태(단백뇨)가 3개월 이상 지속될 때를 말한다. 전 인구의 7명 중 1명꼴로 만성콩팥병에 노출돼 있다.
◇환자 10명 중 7명, 당뇨병ㆍ고혈압이 원인
만성콩팥병은 콩팥 자체 원인이라기보다 당뇨병(49.8%)과 고혈압(20.5%) 등 전신 질환의 합병증 때문에 발생한다(2020년 기준).
콩팥 속 사구체(絲球體ㆍglomerulusㆍ모세혈관이 실타래처럼 뭉쳐진 덩어리)에 염증ㆍ손상으로 발생하는 사구체신염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 밖에 유전성 콩팥질환인 다낭성 콩팥질환, 자가면역질환, 진통제 등 약물 남용, 결석이나 전립선 비대로 인한 만성적 요로폐색도 원인일 수 있다.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한신장학회는 만성콩팥병을 의심할 수 있는 자가진단법으로 9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붉거나 탁한 소변이 나오거나 △소변에 거품이 많이 생기거나 △자다가 자주 깨어 소변을 보거나 △소변량이 줄거나 소변 보기가 힘들거나 △몸 전체가 가렵거나 △눈 주위 및 손발이 붓거나 △혈압이 올라가거나 △쉽게 피로감을 느끼거나 △식욕과 체중 감소 등이다.
하지만 콩팥 기능을 50% 정도 잃을 때까지 콩팥은 별다른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아 말기 신부전이 될 때까지 모르고 지내기 쉽다. 문주영 강동경희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증상에 주목하기보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며 “40세 이상이라면 정기검진을 받고 콩팥에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추정 사구체 여과율(eGFR)’이 15mL/분/1.73㎡ 미만인 말기 신부전으로 악화하면 ‘신(腎)대체요법’을 해야 한다. 신대체요법으로는 혈액 투석, 복막 투석, 콩팥 이식을 말한다. 대한신장학회가 발표한 2020년 신대체요법(말기 신부전) 유병률은 14만5,006명으로 혈액 투석 11만7,398명(81.0%), 복막 투석 5,724명(3.9%), 콩팥 이식 2만1,884명(15.1%)이다.
만성콩팥병은 혈압ㆍ혈당ㆍ체중 관리, 금연, 금주 등 생활습관 개선과 레닌 안지오텐신 시스템(RAS) 차단제ㆍSGLT2 억제제 등 적절한 약물로 악화를 늦출 수 있다.
만성콩팥병에 걸리면 예전에는 콩팥 기능이 매년 3.5%씩 떨어졌다. 10년이면 35%, 20년이면 70%가 줄어든다. 40세에 만성콩팥병 진단을 받았다면 65~70세에는 투석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태원 경희대 명예교수(이수내과 대표원장)는 “최근 치료법이 발달해 연간 콩팥 손상률이 1.3%까지 낮아졌다”며 “이제는 40세에 만성콩팥병 진단을 받아도 80세까지 콩팥 기능을 40% 이상 유지할 수 있게 돼 투석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생채소는 데쳐 여러 번 헹궈 먹어야
만성콩팥병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하려면 식습관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음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 적게 먹거나 피해야 할 음식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만성콩팥병은 단백질ㆍ칼륨ㆍ인 섭취를 줄여야 한다. 단백질을 과다 섭취하면 콩팥에 부담을 줘 콩팥 기능이 더 빨리 악화할 수 있다. 병 정도나 환자에 따라 단백질 섭취를 제한하는 것이 병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만성콩팥병은 소변으로 배출되는 칼륨의 양이 제한되므로 혈중 칼륨 농도가 높아질 수 있다. 칼륨은 생채소나 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데, 껍질을 벗긴 후 채를 썰거나 작게 토막을 내 재료의 10배 이상 되는 양의 물에 2시간 이상 담갔다가 헹구고, 채소는 끓는 물에 데친 후 여러 번 헹구는 방법으로 덜 먹을 수 있다.
곡물류ㆍ유제품ㆍ초콜릿 등에 많이 함유된 인 성분도 콩팥에서 배출되는 물질이다. 인이 배출되지 않고 체내에 쌓이면 피부가 가렵거나 뼈가 약해질 수 있다.
윤혜은 인천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만성콩팥병은 체 수분과 염분 조절 장애가 있는 질환이기에 수분과 염분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며 “수분 섭취가 많으면 부종을 악화시킬 수 있고, 염분 섭취가 많으면 붓고 혈압이 올라갈 위험이 있기에 염분을 줄인 저염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