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와인업계가 한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밀레니얼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와인시장의 주 고객이던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연령에 다다르고 있는데 노년기에는 보통 소비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성년이 된 밀레니얼 세대는 부머 세대보다 와인을 훨씬 적게 마시지만 업계는 이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방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
실리콘밸리 은행의 부회장이자 와인시장의 분석가이기도 한 로브 맥밀런은 지난달 발표한 그의 미국와인산업의 연례 보고서에서“심판의 날이 오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내놓았다.
베이비부머들 은퇴로 와인 판매 감소세
상대적으로 저렴한 맥주·칵테일 등 선호
사회정의 환경 이슈 등 반영한 변화 필요
“이전 보고서들에서 우리는 이미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 와인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고,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와 맞물려 와인 소비가 줄어든 것이 업계의 주 위협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말한 맥밀런은 “그러나 아직 이 문제에 맞서거나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임은 자명하다”면서 향후 10년 동안 미국의 와인 판매는 20%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가 이 추세를 바꾸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명의 밀레니얼 아들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밀레니얼들을 설득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정통해있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와인 인더스트리를 분석해온 맥밀런은 몇가지 효과적인 전략을 갖고 있다.
첫째 부머와 밀레니얼 사이에 있는 X세대가 간과되었다는 점이다. 이 그룹은 1946~1964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이나 1980~1995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들보다 수적으로 적다. 따라서 이들의 바잉 파워는 작지만 와인소비 경향은 부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는 아직 음주연령이 지난 지 얼마 안돼서 의미있는 통계수치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맥밀런은 해리스 여론조사가 작년 11월 2,000명의 성인들에게 파티에 어떤 음료를 들고 가는지 물었을 때 답변이 와인, 맥주, 스피릿(양주), 가미된 몰트, 탄산수 혹은 사이다였음을 예로 들었다. 65세 이상에서는 와인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35~64세에서는 와인과 맥주가 반반이었고, 21~34세 젊은이들은 위의 5개 음료를 거의 동등한 비율로 선택했다.
간단히 말해 젊은이들은 와인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맥밀런은 코로나19 백신이 나온 후 2021년 식당들이 영업을 재개했을 때 와인 판매는 줄고 스피릿이 증가했음을 주지시켰다. “식당 문을 다시 열자 축하파티가 많이 열렸지만 와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쟁이 심해진 게 사실이다. 후기 부머인 내가 와인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에서는 맥주가 대세였다. 아직 수제 맥주가 유행하기 전이었으므로 노인들은 스피릿과 칵테일을 마셨고 멋과 맛보다는 술에 취하기 위해 마셨다.
X세대와 밀레니얼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성장했다. 요즘 맥주는 수백개의 소규모 브루어리에서 수십가지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고 있다. 칵테일 제조는 갖가지 재료 선택에 따라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고, 고품격 스피릿들이 곳곳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나오고 있다. 알코올 음료뿐 아니라 초컬릿, 올리브 오일, 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산지와 품질에 관한 감식안을 가진 이들을 위해 마케팅이 펼쳐지고 있다.
밀레니얼들은 부머들이 젊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감식안이 장려되는 세계에서 성장했다. 소셜미디어는 이들의 평가를 부추겼다. 밀레니얼은 부머들보다 어린 나이 때부터 안목을 갖춘 세대이다.
그러나 맥밀런이 지적했듯이 밀레니얼은 부모 세대보다 수입이 적고 경제적 불안은 더 크다. 학비융자 상환의 부담도 크고, 과연 언제 집을 살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세대다.
바로 그것이 와인보다 맥주와 스피릿을 선호하는 주된 이유다. 맥주는 아무리 비싸도 몇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아주 훌륭한 칵테일도 평범한 와인 한잔의 값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와인은 같은 품질의 맥주나 스피릿에 비해 비싸고, 명품 와인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싸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비해서 훨씬 비싼 것이다. “90년대 중반에는 프리미엄 와인이 훨씬 덜 비쌌다”고 맥밀런은 말했다.
이와 동시에 병당 9달러 이하 싼 와인들의 세일즈는 줄었고 15달러 이상 와인의 판매는 늘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로, 사람들은 와인을 적게 마시지만 좀 더 좋은 것으로 마시려는 경향을 보인다. 맥밀런은 와인업계가 밀레니얼로 대표되는 세대변화를 읽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한 가지, 인종문제가 있다. 부머 세대는 28%가 비 백인이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45%, Z세대는 거의 절반이 비 백인이다. 그러나 와인업계는 이 변화를 수용하는데 느리다. 2020년 5월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 이후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지자 일부 와인업계는 다양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긴 했으나 흑인 와인 전문가들과 소비자들은 아직도 멀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사회정의와 기후변화를 포함한 건강 및 환경 이슈에 민감하다고 강조한 맥밀런은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는 점점 더 소비자의 구매결정과 연결돼있다”고 말했다.
그가 내놓은 제안은 와인생산자들이 칼로리 및 재료와 영양분 데이터를 밝히고 회사의 사회적 가치관, 환경에 대한 고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전략들을 제대로 명시하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 와인인더스트리는 사회정의라든가 노동력의 다변화에 대해 전혀 일원화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계획, 화학농법의 감축, 탄소발자국 줄이기 등에 대한 계획이 없다. 그저 재료와 영양데이터 공개를 막기 위해서만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90년대의 “우유 마셨어요?”(Got Milk?) 광고처럼 마케팅 캠페인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마케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이 있으려면 사실 캠페인보다는 업계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맥밀런이 주장했던 대로 젊은 소비자들이 진짜로 사회정의와 환경 문제를 걱정한다면 온건한 마케팅 캠페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작은 와인세계에서 내다본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와인보다 내추럴 와인을 좋아한다. 이런 와인들은 맥밀런이 말한 젊은이들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와인메이커들은 전통적이 양조법을 고수하면서도 양심적인 농법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이며 변화하고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보여주는 일이다. 슬로건은 실패에 대한 미봉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