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믹으로 소규모 유통업체 80만 곳 폐업
물류 대란에 운송비 6배 뛰는 등 부담 가중
크리스마스는 상인들에게 대목 중 대목이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에서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킴 미첼도 당연히 몇 달 전에 ‘성탄절용 상품’을 주문해 뒀다. 하지만 입고되는 장난감 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가끔 물건이 들어오더라도 그중 인기 있는 제품은 거의 없다. 미국 전체를 집어삼킨 ‘물류대란’ 탓이다. 월마트나 아마존 등 대량으로 상품을 매입하는 대형 유통체인에 우선적으로 장난감이 공급되고 있다는 얘기다.
미첼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가게의 연 매출 35%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집중되는 걸 고려하면 커다란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는 “나를 비롯한 자영업자들이 이번 대목을 놓치면 내년 줄폐업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7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및 전자상거래 활성화, 공급망 붕괴까지 이어지면서 미국 골목상권도 생존의 기로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연방준비제도 자료 기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영향으로 지난해 약 80만 곳의 미국 소규모 소매업체가 문을 닫았는데, 이는 전체 폐업률보다 30%나 높은 수준이다. 전미자영업연맹(NFIB)은 “작년 미국 소매업체의 4분의 3이 영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연방정부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까지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는 미국 경기 회복에도 불구, 물류대란이라는 악재마저 겹쳤다. 골목상권의 타격은 더욱 커졌다. 이들에게 물품을 공급하는 도매업체들은 ‘수천 개’ 단위로 상품을 매입하는 월마트나 아마존, 코스트코 등 대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 아렛의 이사인 숀 마하라즈는 “제조업체는 항상 월마트 등 대형 유통체인을 우선시한다”고 설명했다. 미첼은 “나는 주로 12개 또는 24개 단위로 장난감을 주문한다”며 “3,600개씩 물건을 대량 주문하는 업체보다 (공급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 결과, 자영업자 간 입고 경쟁도 극심해졌다. 의류업체 에버레인의 공급망 책임자 킴벌리 스미스는 “모든 단계가 입찰 전쟁”이라며 “운송 직전에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할 테니 나에게 옷을 공급해 달라’는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판매하는 한 업체 대표인 커티스 맥길은 “1년 전 4,000달러였던 컨테이너 운송비가 지금은 6배로 뛰었다”고 한탄했다.
반면, 전국 체인망을 갖춘 대기업들은 승승장구 중이다. 자영업자와 달리, 이들에겐 물류대란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월마트, 타깃 등 대형 유통업체는 공급망 마비의 해결책으로 ‘화물선 임대’를 택했다. 배를 통째로 빌려 자체적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WP는 화물선 전세 비용이 하루 12만9,000달러라고 추산했다. 소규모 업체가 지불하기엔 불가능한 액수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들만 물류대란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제이슨 밀러 미시간대 물류학과 교수는 “공급망 붕괴 상황에서 가장 큰 직격탄은 협상력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자영업자들한테 가해진다”며 “이들은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가장 오래 기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이나 ‘갑질’ ‘횡포’ 등이 문제로 떠오른 한국의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골목상권이 팬데믹 속에 초토화되고 있는 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