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 3, 2, 1… 해방이다!”
영국 런던 시내 유명 라이브클럽 ‘피아노 웍스’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시곗바늘이 19일(현지시간) 0시를 가리키자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과 함께 댄스플로어로 뛰어들었다. 색색이 꽃가루가 흩날렸고, 번쩍거리는 미러볼도 흥을 돋웠다. 맥주잔을 손에 든 클러버들은 밴드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해방구’가 따로 없었다.
클럽 운영자인 트리스탄 모펏은 “사람들이 억눌렸던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모두가 펄쩍펄쩍 뛰며 광분하고 있다. 21년간 사업을 했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라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이른바 ‘봉쇄 해제’를 접한 영국 사회 분위기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 준 공간이었던 셈이다.
런던의 다른 라이브클럽 ‘오벌 스페이스’가 마련한 행사명은 아예 0시 1분을 뜻하는 ’00:01’이었다. 이곳을 찾은 조지아 파이크는 “춤을 추고, 라이브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환희에 취해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기도 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이날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규제를 전면 해제한 ‘자유의 날(Freedom Day)’ 풍경은 대체로 비슷했다. 지난해 3월 이후 16개월 만에 문을 연 클럽들은 자유에 굶주린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클럽뿐 아니다. 공연장 수용 인원 제한도 폐지됐고, 재택근무 지침도 사라졌다. 지하철에선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지만, 법적 의무는 아니다. 봉쇄 해제의 근거는 △성인 87.9%가 한 번 이상 백신을 맞았고 △68.5%가 접종을 완료하면서 입원이나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확연히 줄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국민 목숨을 건 ‘도박’을 한다”는 반발이 거세다. 신규 감염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탓이다. 17일 5만4,600명까지 치솟은 신규 확진자가 18일(4만8,100명)과 19일(3만9,900명) 다소 줄긴 했지만, 바꿔 말하면 여전히 매일 4만~5만 명의 감염자가 쏟아진다는 얘기다. 정부과학자문단 소속 심리학자 로버트 웨스트 박사는 “위험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주지 않고 조심하라고 하는 건, 운전을 가르쳐 주지 않고 도로로 내보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백신 접종률이 현저히 낮은 젊은 층에서 감염이 폭발할 거라는 우려가 크다. 레스터대 임상바이러스학자 줄리언 탕 교수는 “밀폐 공간인 클럽은 주요 고객인 18~25세 젊은이들 감염 확산의 고리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변이가 만들어지는 완벽한 ‘혼합’ 용기”라고 지적했다. 결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9월 말부터 클럽 방문 시 백신 접종 인증서를 내도록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더욱 큰 문제는 감염자 증가로 자가격리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경제가 마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주일간 신규 격리자만 50만 명이다. 영국 슈퍼마켓 체인 ‘아이슬란드’는 “전체 직원 4%인 1,000명 이상이 격리돼 있어 일손 부족으로 문 닫는 매장이 속출한다”고 토로했다. 도로운송협회도 “화물운송 인력난으로 곧 공급망 마비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각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지드 자비드 보건장관에 이어 접촉자인 존슨 총리와 리시 수낙 재무장관까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내각 1, 2인자와 방역 총책임자가 동시에 자리를 비운 것이다. 국제사회엔 ‘영국 경계령’마저 발령됐다. 미국은 이날 영국에 대해 여행금지 경보를 내리고 국경을 닫았다. 로이터통신은 자체 집계 결과 세계 6개 대주(大洲) 중 처음으로 유럽에서 확진자가 5,000만 명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훗날 ‘자유의 날’이 아닌 ‘재앙의 날’로 기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하루였다.
<김표향 기자>